희생정신
희생정신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3.12.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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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1993년 1월7일 한국전쟁 후 청주에서 사상최대의 비극이 있었으니 무리한 설계변경, 자재불량, 전형적인 부실공사로 인한 우암상가아파트 붕괴사고였다. 새해 벽두에 일어난 우암상가아파트 붕괴참사는 청주시 행정 당국의 겉치레 식 안전관리와 부실공사가 불러온 대재앙이었다. 산산조각난 폐허 곳곳에서 숨진 29명 가족들의 통곡은 오랫동안 멈출 줄을 몰라 주변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느라 멍한 표정들이었다.

이날 사고는 오전 1시10분쯤 아파트 1층 상가의 이불가게 복덕상회 근처에서 일어나 옷, 신발가게, 지물포 등 이웃 점포로 삽시간에 번졌다.

불을 처음 목격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날 집에 늦게 들어와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고무 타는 냄새가 나 밖으로 나와 치솟는 불꽃을 보고 소방서에 신고한 후 `불이야' 소리를 외쳤다고 한다.

청주소방서 대원들이 진화작업을 벌이는 오전 2시10분 `펑'하는 폭발음이 여러 차례 나면서 아파트 건물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붕괴 직전까지 주민들이 아파트 1층 출구와 4개의 비상구로 대피하려 했지만, 그곳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고, 비상구 철제문이 굳게 잠겨 있어 우왕좌왕하는 등 아비규환이었다.

붕괴한 건물해체작업에서 굴착기가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걷어낼 때마다 시커멓게 그을려진 잠옷 바람의 시신 모습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지옥의 현장을 빠져나오려다 숨진 처참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구조작업에는 소방관 1백90명, 경찰 1백50명, 의용소방대원 2백50명 외에 공군부대장병 1백40명이 굴착기 중장비로 이날 오후 늦게까지 건물잔해를 철거 정리했다.

청주시내 8개 병원에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가족 친지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일가족 모두가 당하는 참사가 잇따라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1981년 11월 완공된 우암상가아파트는 지하1층 지상4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지하점포 46개, 1층 점포 20개, 2층 사무실 8개와 15평형 아파트 59세대 70가구 3백98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아파트는 당초 5층으로 설계되었다가 2차례의 설계변경 후 4층으로, 다시 지하1층 지상4층으로 바꾸는 등 일관성없는 건축공사와 성의없는 자재공급으로, 기둥에 적정규격의 철근이 사용되지 않는 등 날림으로 지어졌다고 알려졌다.

또한 토목건축행정을 맡은 일부 공무원이 평소 건설업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부실시공으로 문제가 생기면 현직을 떠나 말썽이 난 토목건축회사의 책임자나 직원으로 취업하여 관계공무원과 줄을 잡고 부실시공을 하는 사례가 거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는 소문이다.

모든 사고에는 꼭 의로운 사람이 있다. 어느 용감한 부부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불길속을 뛰어다니며 많은 사람을 피하게 하느라고 자신들이 화상 입은 것도 모르고, 생사기로에 놓인 긴박한 처지도 아랑곳없이 깊은 잠에 빠진 이웃 사람들을 깨워 밖으로 내보냈다. 이 부부가 정신없이 사람들을 구하려 할 때 `펑'하는 소리와 동시에 건물 전체가 무너졌고, 그 의인 부부도 함께 묻히고 말았다.

우리 삶에 큰 힘을 주고 새롭게 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각박하다는 이 세상에 그래도 적지 않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것에 존경스러움으로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의로운 모습으로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비록 우리 사회가 믿음이 사라져가고 혼란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인간다움을 되찾을 가능성을 믿고 내재적 의미와 외재적 의미가 있는 참인간의 필요인생을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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