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의 낙서에 답하다
벽의 낙서에 답하다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12.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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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은 일반적으로 부모로부터 태어나,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부터 세속적 이해 관계에 얽매여 살아가게 된다. 부와 명예로 대변되는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지게 된다. 그러다가 나이가 더 들면서 문득 삶의 가치가 세속적 잣대로 재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찾아오곤 한다.

당(唐)의 시인 장위(張渭)는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 가치관을 경계하는 시를 남기고 있다.

벽의 낙서에 답하다(題長安主人壁)

世人結交須黃金(세인결교수황금) 세상 사람들이 사귐을 맺음에 반드시 돈을 따지니
黃金不多交不深(황금부다교불심) 돈이 많지 않으면 사귐도 깊지 않다네
縱令然諾暫相許(종령연락잠상허) 잠깐 믿고 서로 마음 허락하였다 해도
終是悠悠行路心(종시유유행로심) 끝내는 아득히 먼 길 떠난 마음 된다네.

시인이 생존하던 시절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곳은 당(唐)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이었다.

부와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 가치들의 집대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인은 장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떠돌다가 모처럼 장안을 찾은 듯하다.

시인이 묵은 곳은 장안의 객사 또는 지인의 집이었을 텐데, 그 주인의 방 벽에 씌어진 글을 보고 거기에 답하는 글을 시 형식을 빌어 써 놓았다. 방 벽에 쓰여 있던 글의 내용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세속적 가치를 좇는 것 아니면, 그것을 경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간에 시인은 그 글을 보고 시심이 동한 것은 사실이다. 시인이 주목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사귐 문제였다. 사귐을 맺을 때 가장 비중 있게 고려하는 것이 황금 즉 돈이라는 것이다.

의리나 명분 같은 사람 됨됨이는 뒷전이고 돈의 많고 적음이 사귐의 기준이 되는 세태를 한탄한다.

돈이 많지 않은 사람과의 사귐은 얕게 마련이라서, 얼마 안 있어 마치 아득히 먼 길을 떠나 버린 사람 취급하게 되는 부박함을 드러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세속적 가치에 매몰되기 쉽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돈을 앞세우는 정도가 노인이 될수록 강해진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러한 가치관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노년 시기이다. 나이가 들수록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야 인생의 허무함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을 것 아닌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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