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 김오랑이 지상의 별들에게 묻는다
하늘의 별 김오랑이 지상의 별들에게 묻는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12.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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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12·12 쿠데타의 성격을 간명하게 압축한 장면이 1979년 그날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실에서 벌어진 총격전이다. 전두환 반란세력의 회유를 거부한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집무실에서 직속 부하들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체포되는 대목이다. 이 하극상을 지휘한 인물이 당시 최세창 3공수단장이다. 정 사령관이 직접 지근거리 3공수단장에 추천할 정도로 애정했고 신뢰했던 부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던 직속 상관을 체포하라고 부대원들을 보내며 “저항하면 사살하라”는 비정한 명령을 내린다. 군부 엘리트들이 국권 찬탈을 위해 패륜 수준의 만행을 서슴지 않았던 게 12·12의 민낯인 것이다.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영화 `서울의 봄'에도 특전사령부 총격전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관객에게 각인된 인물은 정 사령관보다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비서실장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이다. 배우 정해인이 오진호라는 이름으로 연기했다. 그는 사령관실에 들이닥친 쿠데타군과 교전하다 여섯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사령관을 보좌해야 할 특전사 참모들은 모두 회유와 압력에 굴복해 협조·방조·도주 중 하나를 택했고 김 중령만 유일하게 소임을 다했다.

그는 육사 25기로 장교 시절 육군대학을 수석 졸업한 재원이다. 베트남 전에서 돌아와 특전사로 배치돼 사령관 비서실장에 발탁됐다가 비운을 맞았다. 그날 현장에서 사령관 체포작전을 지휘한 3공수 대대장 박종규 중령은 김 중령과 한 아파트에 살며 가족 교류까지 해온 이웃이기도 했다. 박 중령은 사령관실 습격을 앞두고 기울어진 대세를 받아들이라며 김 중령을 여러차례 설득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한다.

쿠데타를 주도한 신군부 세력은 내란죄와 반란죄 등을 선고받고 법과 역사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 내란과 반란에 맞섰던 김오랑은 참군인 대우를 받았을까? 김 중령을 처단한 쿠데타 군은 시신을 특전사 뒤 야산에 암매장 했다. 이듬해 젊은 장교들이 항의하고 나서야 국립묘지 현충원으로 옮겨졌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후 유족들이 고인의 명예를 바로세워 달라며 특진과 무공훈장 서훈을 요구했으나 1990년 중령 진급만 수용됐다. 국회가 17대부터 채택한 무공훈장 추서 결의안도 자격 미달이라는 국방부 반대에 막혀 번번이 좌절됐다. 육사 출신 의원들은 하나같이 결의안 서명을 거부했다. 국방부는 2014년이 돼서야 무공훈장 대신 보국훈장을 추서했다. 김 중령의 묘비에는 아직도 `전사'가 아닌 `순직'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반란군을 막다 전사한 군인을 업무 중 사고로 사망한 순직자로 처리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에야 유족에게 전사확인 통지서가 전달됐다.

한편의 영화가 잠들었던 공분을 일깨우는 지금, 우린 4년전 유튜브에 등장해 12·12 쿠데타를 `나라를 구하려는' 충정으로 평가했던 인물이 국방부장관을 맡고있는 시대적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신원식 장관은 육사 37기로 합참 차장까지 역임한 중장 출신이다. 그에겐 육사 12기 선배인 김오랑이 구국의 거사를 방해한 시대착오자였던 셈이다. 뼈아픈 성찰 대신 궤변으로 부끄러운 과거를 분칠하는 행태가 군이 김오랑에 대한 복권과 예우를 한사코 기피해온 까닭을 짐작케 한다.

지금 군에서는 별 둘인 해병대 전 사단장이 전 수사단장(대령), 대대장(중령) 등과 호우 실종자 수색에 나선 사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고를 놓고 낯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는 수사단에 의해 무리한 명령으로 사고를 초래한 피의자로 적시됐다가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구제됐다. 그리고는 사고 책임을 모두 부하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그는 별이 되었다. 허무하지만 당당하게, 가려졌지만 찬란하게, 역사의 하늘에 걸린 별이다'. 경남 김해시 김 중령의 모교 옆에 세워진 그의 흉상에 특전사 한 후배가 새겨넣은 추모의 글이다. 별답지 않은 지상의 별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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