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는 우리의 현주소다
`29'는 우리의 현주소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12.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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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전 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2030 부산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가 불발됐다. 표차도 크다. 접전이 예상됐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리야드가 119표(72%)를 얻고 부산은 29표(18%)에 그쳤다. 중도 포기했던 이탈리아 로마의 17표(10%)가 돋보일 정도였다. 정부가 결선 투표를 언급하며 역전을 호언했던 터에 나온 초라한 결과라 국민의 허탈감이 더욱 크다.

사실 국민은 엑스포 유치의 실패 자체에 실망하는 게 아니다. 현격히 기울어진 판세를 읽어내지 못하고 막판까지 국민의 기대심리를 부추긴 허술한 외교 역량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유치위원회와 민관 대표단은 509일 동안 지구 495바퀴를 도는 거리를 강행군 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아프리카까지 넘나들며 182개 BIE(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정상과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부산 엑스포의 당위성을 알렸다. 이 대장정을 윤석열 대통령이 진두 지휘했다.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 차 방문한 뉴욕에서는 5일 동안 48개국 정상을 만나 부산을 홍보했다. “한달 동안 가장 많은 정상회담을 가진 대통령으로 기네스북 등재 신청을 할까 한다”는 말이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분투는 “모든 것은 제 부족의 소치, 저희가 느꼈던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는 대국민 사과로 귀결됐다. 허망한 결과 앞에서 국민은 고생한 대통령과 관계자들에게 `졌잘싸 (졌지만 잘싸웠다)'라는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게 됐다.

정부 예측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결과가 나온 탓에 오판에 대한 구구한 해석이 제기된다. 홍준표 대구시장 같은 이는 “대통령에게 박빙이라고 거짓 보고를 했다”며 참모들의 고의성을 의심한다. 결과를 예상했으면서도 진두에 선 대통령의 심기를 고려해 부정적인 보고를 못한 것 아니냐는 풀이다.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우리 국정 시스템이 바로 들통날 거짓보고가 횡행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접촉한 국가의 “잘 알겠다“는 의례적 수사들을 순진하게 진의로 해석하고 낙관의 근거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홍 시장 말처럼 `아부에 찌든 참모들의 문제'가 아니라 무딘 정보력과 분석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로만 치부해선 안된다는 자위의 소리도 나온다. 지구촌 구석구석 오지까지 발품을 팔며 외교 지평을 넓힌 성과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할 외교 발판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할 만하다. 자책만 할 일도 아니지만 처절한 자각도 병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표결에서 국제사회가 매김한 한국의 현주소가 드러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사우디가 우리보다 먼저 유치전에 나서 막강한 오일머니로 개도국들을 선제 포섭하며 고지를 선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우디의 물량 공세만을 패인으로 돌리는 것은 세계 10위 경제대국 답지않은 안일한 결론이다.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부산엑스포를 언급하며 각국의 호응을 부탁했다. 외교 당국자는 이 연설이 `국제사회의 큰 공감을 얻었다'며 반전의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국제사회의 현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믿었던 도끼가 발등을 찍은 경우가 허다했을 것이다. 오직 국익만을 고려하는 실리 외교가 대세가 된 지구촌에서 가치와 이상의 공유만으로는 공조의 울타리를 넓혀가기 어렵다.

해서 `29'라는 숫자는 대한민국에 냉정한 성찰을 요구한다. 국제사회에 더 큰 울림과 공감을 야기할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엑스포 유치전에서 빛을 발했던 통합과 연대의 역량은 이제 국격을 높여 국제사회의 신뢰와 존중을 보다 두텁게 하는 과제로 돌려져야 한다. 저출산과 3대 개혁 등 나라의 미래가 달린 국내 현안 해결에도 발휘되길 기대한다. 그래야 훗날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끝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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