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걷기 감사송
맨발걷기 감사송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11.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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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11월30일,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인데 만추는 온데간데없고 겨울이 제 세상인양 설칩니다. 때 이른 한파에 놀라 줄행랑을 쳤기 때문입니다.

여름과 겨울의 봄가을 영토 침탈로 금수강산 대한민국이 봄가을 없는 삭막한 여름겨울공화국으로 치닫고 있어 심히 걱정입니다.

맨발걷기 명소인 용정숲공원도 목하 겨울입니다. 땅도 공기도 차갑고 떨어져 널브러진 낙엽들이 찬바람에 흩날리고 있어 스산합니다.

오솔길을 걷다보면 본의 아니게 바람에 날려 온 낙엽들이 발바닥에 밟힙니다. 밟는 심사가 편치 않습니다. 자신을 낳고 키운 나무의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아니 내년 봄에 돋아날 잎새들을 위해 산화한 갸륵한 희생제물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그러하기에.

각설하고 금년 가을은 제겐 시련의 계절이었습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17일 골프를 치다가 무릎연골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해 운동하기 좋고 여행하기 좋은 가을철 내내 아픔과 장애를 벗하고 살았으니 말입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백발에 지팡이 쥔 상노인 같은 내 모습에 대경실색한 후 자신을 다그쳤습니다. 달라져야 한다고, 전화위복되게 하라고.

그날 바로 미장원에 가서 머리카락을 까맣게 물들이고 재활의 강도를 높여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원망과 자책이 감사와 사랑으로 바뀌는 놀라운 변화가 내게 시나브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중심에 맨발걷기가 있었습니다. 의사의 수술 권유를 뿌리치고 재활치료를 하던 중에 맨발걷기를 한번 해보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밑져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김수녕양궁장 맞은편에 있는 용정숲공원 오솔길을 매일 2시간 정도 지팡이를 짚고 맨발걷기와 접지를 병행했는데 그게 주효한 겁니다.

다친 왼쪽다리를 질질 끌며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걸었는데 20일쯤 하니까 무릎이 접혀지고 걷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고 수면의 질도 좋아지는 등 부수효과도 있어 맨발걷기는 두 달째 현재진행형입니다.

중병을 치유하기 위해 기도하듯 걷는 의지의 환우들과 건강증진을 위해 걷는 선남선녀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걷는데 걷는 모습과 안색이 좋아지는 이를 보면 내일처럼 반갑고 기쁩니다.

부부가, 모자가, 모녀가 나란히 정겹게 걷는 모습은 보기 좋고 부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맨발걷기에는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눈 오고 얼음 어는 엄동설한에는 어쩌나 걱정되는 걸 보면 맨발걷기 마니아가 된 게 분명합니다.

무릎을 다치지 않았으면 몰랐을 재미이고 보람이어서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살다보면 자신의 부주의나 관리소홀로 혹은 타인의 과실과 예기치 않은 재난과 재해로 다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재수 옴 붙으면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죽기까지 합니다.

사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다쳐봐야 아파봐야 아니 몽매하기 그지없습니다.

신체의 부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릎연골이 조금 찢어졌을 뿐인데 마음대로 걷지를 못합니다. 걷지를 못하니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빠지고 허약해집니다. 삶이 질이 형편없이 곤두박질칩니다.

한낮 무릎연골도 그럴 진데 소중하지 않은 부위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할 때 아니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부터라도 건강을 챙겨야 합니다.

불의에 사고나 아픔조차도 감사해야 합니다. 운전할 수 있게 왼쪽 무릎을 다쳐서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감사하는 저처럼. 그러면 그에 상응하는 깨달음과 보상이 절로 따라옵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아프고 더 슬프고 더 불행한 사람들이 많고 많습니다. 그들 모두는 오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굳세게 삽니다. 아니 애써 웃고 감사하며 삽니다. 맨발걷기도 그렇습니다. 감사와 건강을 확장하는 의지의 걸음입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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