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향녀(還鄕女)
환향녀(還鄕女)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3.11.28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조선시대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청나라 오랑캐에 끌려갔던 포로들의 애환을 그린 MBC 드라마 `연인'이 대한민국 정치사회 난맥을 꼬집고 방영을 마쳤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길채는 청나라에 끌려가 온갖 고생과 역경을 딛고 탈출해 조선으로 귀향한 환향녀(還鄕女)다.

당시 양반이라는 지배층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조선에서는 환향녀를 `나라 망신시킨 여자', `낯 두꺼운 여자', `오랑캐에 더럽혀져 정절을 잃은 여자'로 취급하면서 냉대했다.

신분을 망라했던 환향녀는 가문의 수치를 이유로 나라에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양반가의 상소가 이어질 만큼 당시 조선에서는 큰 사회문제였다.

드라마 `연인'은 당시 인조왕과 양반 정치인들이 오랑캐에 나라를 유린당한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노예로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백성들을 오히려 내팽개치는 무능함을 잘 묘사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배상 판결 문제로 반목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사회 현실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실제로 병자호란 때 노예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들의 애환을 다시금 연상케 하는 일들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고등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군 위안부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국가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역사적·법적으로 의미가 큰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한·일 양국의 오랜 갈등인 역사 정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법원 판결에 일본은 `극히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한국 정부가 스스로의 책임으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강구할 것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한다”고 항의해 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마저 외면한 채 저자세 대일 외교에 급급한 모습만 보였다. 일제 강점기 식민치하에 강제로 끌려가 몸을 짓밟히고 돌아온 일본군 위안부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노예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나 입장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전란으로 고난을 겪게 된 백성들의 아픔은 당연히 국가에서 책임지고 위로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과거 조선이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백성과 국민의 아픔을 책임지고 위로하지 않으려고 하는 DNA는 변함이 없다.

이 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이고 온전한 법치국가라면 이번 사법부 판단에 대해 정부는 철저히 존중하고 역사적 정의 실현과 국민의 피해 회복을 위해 적극 대응해야 마땅하다.

일본과의 외교 개선을 이유로 일방적인 양보를 고집하는 사이 몇 명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 명 한 명 무덤을 향하고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240명의 일본군 위안부 중 231명이 사망했고 2023년 6월 기준으로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는 고작 9명 뿐이다.

대일 관계 개선에 목숨 걸고 있는 정부가 진정 일본군에게 짓밟히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 죽을 때까지 버티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일본은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조선 민족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 민족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2차 세계대전에 패배하고 조선 땅을 떠나면서 한 말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와 국정 운영 실상을 돌이켜 보니 그냥 지껄인 말 같지가 않아 소름이 돋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