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 (二律背反)
이율배반 (二律背反)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3.11.21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대한민국은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 각 사회분야에서 일하다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강제적으로 퇴직하도록 하는 정년제가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고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면서 사회 정체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마련된 제도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과 판단력이 퇴화되기 때문에 직장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리듬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총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삶의 공정한 이치이고 수순이자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에 정년제가 없는 특권 직종이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특히 정치권 중에서도 국회의원은 늙어 죽기 직전까지 자리를 넘겨주지 않아도 되는 정년이 보장돼 있다. 조건만 좋으면 임기도 무한대다.

국회의원도 국가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자신들은 그냥 평범한 공무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수직 공무원이라고 강조한다.

대통령도 5년 이상은 못한다. 자치단체장이나 광역·기초의원도 최대 12년까지만 자리가 보장돼 있다. 공무원이든 기업체 회사원이든 모든 직장인들은 60세가 되면 좋든 싫든 퇴직을 해야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나이와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해먹을 수 있다. 특혜도 이런 특혜는 없다. 이런 불평등 특수직업을 만든 장본인들이 국회의원 자신들이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서는 `험지 출마' 논란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험지 출마를 요구받는 이들은 여·야당 대표를 비롯해 깃발만 꽂아도 당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지역구에서 12년 이상 국회의원을 꿰차고 있는 중진들이다. 험지 출마는 내년 총선에서 지지세가 약한 곳에 중진의원들이 출마해서 희생정신을 발휘하라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험지 출마를 요구받고 있는 중진의원들은 딴청을 부리고 있다. 일부는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유는 별거 없다. 그랬다가는 평생 해 먹을 수 있는 귀중한 국회의원 자리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에게 당에 대한 희생은 필요치 않다. 오직 나만 살고 보자 식이다. 그들은 국민을 핑계 대고 나라를 팔아가면서까지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걸핏하면 개인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고 특권도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험지 출마는 죽어도 안된다고 한다.

특권을 부여받았으면 특권에 걸맞게 민의를 대변하고 불의에 맞서면서 소신 있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거늘 이 엄중한 특권을 자신들의 평생직장 만들기에만 사용하려 하니 국회의원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 고울리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회의원이라는 특수직업에 대해 `고비용 저효율 직업', `일하지 않고 세금만 축내는 직업', `쌈박질만 하는 직업', `거짓말로 먹고 사는 직업'으로 분류한지 이미 오래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에게 정년제 도입을 아무리 주장해 봐야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어차피 남들은 60세 나이에 정년을 맞지만 국회의원은 60세에 된 사람들도 있고 더 많은 나이에 된 사람도 있으니 정년제 주장은 모순으로 봐야겠다. 그러나 국회의원도 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정치인들처럼 똑같이 3선까지만, 12년까지만 임기를 보장받는 것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본다. 민주주의의 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평등이다. 결론적으로 국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특권을 국회의원 자신들만 평생 죽을 때까지 누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이율배반 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