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11.15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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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걸핏하면 `내가 누군데'하는 사람과 `니가 뭔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하기 싫은 꼴불견들입니다. 맞서면 싸움날 것 같고 피하면 그릇될 것 같아 난감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꼴불견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 싫어서입니다.

욕설과 함께 행해지는 고압적이고 공격적인 언어폭력도 문제지만 그 보다 더 심각한 건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 뒤에 도사리고 있는 신체적 위해와 갑질입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K 국회원의 대리운전기사 폭행사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 부천 현대백화점의 `갑질 모녀' 사건 등이 이를 웅변합니다.

`내가 누군데'는 `알아서 기어 또는 까불면 죽어'를 내포하는 안하무인의 언사이고 책동입니다.

이런 언동을 일삼는 이는 크게 세 부류입니다.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무기로 부하직원과 서비스종사자와 이웃들에게 갑질하는 얼치기 졸부들과 한 때 향유했던 지위와 영향력을 내세워 대우받기를 바라는 이른바 꼰데 은퇴자들 그리고 만만한 약자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불한당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할리우드 스타 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음주 운전을 하던 남편이 경찰에 적발되자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난동을 부렸고, 미국 뉴욕주 몬티셀로시의 고든 젠킨스 시장도 음주 운전 혐의로 체포된 뒤 `내가 누군지 알아? 너희를 취직시켜준 사람이야'라며 행패를 부렸으니 말입니다.

`내가 누군데'에 대하여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기간 명성을 얻거나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에게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신흥 졸부들이 화려한 사치품을 구매하는 심리와 같은 행동이라 했고, 유범희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자신이 기대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과거 보잘 것 없었던 시절에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던 사람을 떠올리고 공격성을 표출하는 심하면 마음의 병으로 다뤄야 할 열등감의 그림자라 했습니다. 일리 있다 여겨집니다.

`니가 뭔데'는 `끼어들지 말고, 참견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를 내포하는 고약한 말입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될 때, 자신의 의사에 반할 때, 아랫사람 대하듯 가르치려할 때 주로 씁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나을게 없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어 자칫 잘못하면 `니가 뭔데, 너나 잘해'라는 역공을 받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절연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휘발성이 큰 언행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란 말을 삼가고 또 삼가야합니다.

세상에 나보다 못난 사람 없고 귀하지 않은 사람 없으니 당연지사입니다. 돌아보니 살면서 저도 알게 모르게 혹은 은연중에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를 적잖이 했음입니다. 하여 `내가 누군데' 하며 거드름을 떨었던, `니가 뭔데' 하며 면박을 주고 책망했던 지난 과오를 반성합니다. 남는 건 빈축을 산 것과 후회뿐이니 부질없는 허세였고 어리석은 교만이었습니다.

고희를 넘고서야 비로소 압니다.

남에게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하면 독이 되지만 자신에게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하면 약이 되는 이치를. 그래서 남은 생이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경우에 처하든 남이 아닌 자신에게 먼저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하며 살리라 다짐합니다. 다치거나 아파서 낙심할 때, 게을러지고 포기하고 싶을 때, 화가 치밀고 미워질 때 `내가 누군데' 이까진 거쯤이야 하며 툴툴 털고 일어나 우일신할 것을.

누군가에게 충고하거나 무슨 일에 끼어들 때엔 내 자신에게 먼저 `니가 뭔데' 그러냐고 되묻고 자중자애 할 것을.

아무튼 내가 니이고 니가 나인 세상살이입니다. 내가 니와 우리가 되는 세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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