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하는 날
벌초하는 날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3.11.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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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첫 기억은 늘 오랜만에 만난다. 자주 기억하면 현실처럼 느끼기도 한다. 기억이 희미해져 자꾸 기억하고 싶을 때가 되면 결국엔 아무 기억이 없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그래서 첫 기억이 남아있기를 갈망한다. 기억은 잊히기는 할지라도 지울 순 없다.

어릴 적 기억이라 모호하다. 코끝에 진한 향수만 남아있는 느낌이다. 언젠가는 전부 되살아나는 게 기억일지도 모른다. 회색빛 시간에 기억하는 일은 매섭게 남은 상처가 있거나, 허둥대다가 우연한 계기로 행운을 얻었을 때다.

어릴 적 아버지는 녹슨 이발기로 내 머리를 빡빡 깎았다. 그리곤 낡은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훌훌 털어내며 요놈은 날 닮아서 참, 잘 생겼다며 쓰다듬어 주셨다. 하지만 난 울고 있었다. 머리는 잘 잘리지 않고 이발기를 댈 때마다 머리카락이 뜯겨 아픔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거친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시며, `이쁘네, 이쁘다. 잘 생겼어.' 못내 씻으라는 듯 손사래를 치셨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해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죽으면 조상님 무덤에 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벌초 당일 아침 서두르는 사람이 있다. 일기 예보에 비가 온다고 해서인지 나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왜 그러냐며 차분한 언성을 냈다. 미안한 마음에 물과 수건, 모자, 음식을 차에 싣고 주섬주섬 따라나섰다.

봉우리 위로 자란 풀들과 덩굴이 숲으로 우거져 있다. 하긴 예전에는 명절에도 한식날에도 다니며 개사초했는데, 최근에는 일 년에 한 번 다녀가며 벌초만 하니 그야말로 조상님들 볼 면목이 없다. 예초기로 윙윙 큰 풀을 깎아내면 아내는 갈고리로 긁어서 한곳으로 모았다. 힘들게 벌초가 끝나면, 무슨 죄라도 용서받은 듯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다.

일기 예보는 빗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소낙비였다. 벌레들이 날아다니기도 했지만, 벌레 퇴치기를 뿌려대는 아내는 열심이다. 그렇게 벌초를 마치고 할머니, 아버지께 묘제를 올렸다.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가톨릭 예식인 연도를 드렸다.

아내는 아버지의 묘 앞에서 깔끔하다며 “이쁘네. 이뻐” 한다. 버릇없이 아버지한테 `이쁘네. 이뻐'하는 아내가 더 이뻤다. 작년보다 떼가 더 많이 붙었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듣고 계실까? 좋아하시겠지! 이런 아내를 아버지께 인사를 못 드렸다. 산소 주변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지만, 아내가 몸살을 앓을까 걱정이다.

정점에 이를 시간에 동백의 향기와 솔잎 향이 그리웠다. 나의 고향은 송림 해수욕장이 있는 서천 바닷가다. 파도의 결 따라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이 살갗에 닿아 속삭인다. 그것은 따뜻한 품이다. 고향 바다는 늘 같은 바다였다.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니 오랜 기억과 기억이 교차했다. 노을이 지고 밀물 때가 되면 아버지와 바다낚시를 매일 하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에서 군산 바다를 통해 실어 온 통나무를 기계톱으로 자르는 일을 하였다. 퇴근하신 아버지 몸에는 늘 나무 냄새가 났다.

솔잎 향이 기억을 깨운다. 아버지의 나무 냄새가 더욱 그리워진다. 내 머리는 따끔거리며 집히고 뽑혀 아팠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먹먹함이 코끝을 시리게 한다. 머리를 깎아주던 아버지와 울어대던 내 기억은 잊지 않고 남아있다. 소중한 선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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