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릇 만큼
내 그릇 만큼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3.11.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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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장맛비에 길은 패었고, 크고 작은 돌멩이가 깔린 길을 덜컹거리며 올라갔다.

친구의 트럭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못 낼 길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골짜기의 밤나무 아래에는 밤송이와 크고 작은 알밤이 지천으로 널렸다.

밤을 주우려고 손을 뻗다가 가시에 찔렸다. 움찔하며 살펴보니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리 쉽게 내어줄 수 없다는 경고 같았다. 가시는 여린 밤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였다. 누가 해코지라도 할세라 앙다물고 있던 껍질도 속살이 단단하게 영글면 입을 쩍 벌리고 우리네 마음을 유혹한다.

이렇게 열매를 키우느라 수고한 나무를 올려다본다. 까마득히 높다.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볕을 고루 나누면서 숲을 이뤘다. 경쟁 관계이면서도 서로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은 결국 자신을 지키는 일이지 싶다.

나는 수필을 공부한 지 12년이 되었다. 오랜 시간 망설이다 용기 내어 수필 교실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내 어색함을 아셨는지 선생님은 두 팔로 안아주셨다.

숫기 없던 내게 포옹은 응원이 되었다. 그 응원에 힘입어 몇 년 후 등단했지만, 좋은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글 당번 차례가 오면 며칠 밤을 끙끙대며 준비하지만, 문우들의 합평을 들을 때면 밤송이 가시에 찔리는 것처럼 마음이 따끔거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좌절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서툰 글이지만 한 편을 쓰고 나면 깊숙이 묻어둔 상처에 새살이 돋는 것처럼 치유가 된다는 사실이다. 문우들의 글이 저만치 앞서가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고 나는 내 그릇에 담을 만큼의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요즘은 독서 모임을 통해 마음의 곳간을 채우고 있다. 정해진 페이지만큼 책을 읽고 매일 리뷰를 쓰는데 동료들의 글에 눈길이 더 간다. 부족한 내 글에 주눅 들어 있다가도 그들의 격려에 용기를 내고는 한다. 나무들도 폭풍이 몰아칠 때는 같은 방향으로 함께 흔들리며 누웠다가도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난다.

내가 좌절이라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도 동행하는 문우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심어놓은 곡식도 자연이 키운 열매도 무르익는 계절이다. 골짜기의 밤나무는 지난겨울부터 꽃눈을 지키느라 강풍에 맞섰고, 꽃샘추위의 시샘에도 꿋꿋하게 싹 틔우고 열매 맺었다. 여름의 불볕을 온몸으로 품어 안은 것은 오로지 열매를 키우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둘 수확이 빈곤하다고 느낄수록 좋은 글을 찾아 읽고, 서툰 글이라도 더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는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글을 쓸 날이 오지 않을까.

이왕 시작한 글쓰기 공부다. 나는 꼴찌로 결승점을 통과해도 좋다. 묵묵히 쓰며 내 가슴속의 굴곡마다 상처 난 곳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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