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
인생 이야기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3.11.07 1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카메라 앞에 서면 처음엔 누구나 긴장한다.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추억 공유 디지털 영상자서전'이라는 동영상 제작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맡은 일은 주로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일이다. 카메라 앞에 앉은 주인공은 몇 가지 질문에 따라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린 그 장면을 영상으로 담으며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울고 웃곤 한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6.25전쟁이 부모님을 앗아간 이야기, 가난에 입 하나 덜려고 피붙이를 남의 집으로 떠나보낸 아픈 날들을 회상한다. 부모 형제 없이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삶을 잘 추스르고 살아오신 분도 어느 대목에는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의 삶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자식들에게 또는 함께 한 생을 살아온 배우자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신랑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여 시집살이한 이야기 등 겪어보지 않은 우리들은 감히 이해하지 못할 삶을 살아오신 분들의 희노애락을 듣는다.

삶이 그런 것일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잠시 되짚어 보는 그리 긴 시간도 아니건만 카메라 앞에서는 가슴속 저 밑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영상을 찍는 이도 어느 대목에서는 터지려는 눈물샘을 막으려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소용이 없다. 잠시 찍던 영상을 중지하고 눈물을 닦고 다시 시작할 때도 있다.

짧은 시간에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다니 놀랍다. 평상시에 알던 사람도 아니고 한 두 번 만남이 있고 촬영에 임하는 사례도 있지만 첫 만남에서 짧은 시간 서먹한 시간을 떨치지 못하고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할 이야기가 없다며 망설이던 어르신도 일단 녹화가 시작되면 카메라 앞에서는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삶의 갈피에 잠재워 두었던 힘들었던 기억, 슬펐던 일들, 가슴 벅차게 기뻤던 일들을 술술 자아낸다. 고작 한나절도 안되어 오랜 교감이 있었던 듯 가깝게 느껴진다.

힘든 삶을 잘 살아오신 분들에게 저절로 존경심과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촬영이 끝났다고 금방 자리를 뜰 수도 없다. 미처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두 손을 잡거나 등을 토닥여 드리며 `힘든 세월 잘 살아오셨다고' 진심 어린 마음을 전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친정엄마나 아버지도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어떤 이야기들을 하셨을까. 영상을 찍으시는 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힘든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유년을 보내셨으니 가슴 저미는 일들을 어찌 말로 다 풀어낼 수 있었을까. 사는 일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부모님의 삶의 애환들을 조용히 들어드리지 못하고 떠나보냈을까. 자식들 앞에 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많았을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영상은 세대 간 소통의 매개체가 될 터이다. 우리와 어르신들은 불과 십 년 이십 년 차이로 시대와 문화가 다른 삶을 살아오신 듯하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 접하는 좋은 매체들이 많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기회를 빼앗기고 자란다. 영상을 찍으시는 분들께는 좋은 추억이 되고 그분들의 후손들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상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시대와 문화를 알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