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에서
가을 들판에서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3.11.0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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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벼이삭 익는 냄새가 온 들판에 퍼지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노란 바다 곁에 서있는 기분이다.

파란하늘 아래로 유영하는 고추잠자리 떼마저 가을의 정취를 한층 고조시킨다.

모내기를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수 때로 접어들었으니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그동안 농부가 쏟아낸 수고와 땀의 결실이 출렁대는 풍경이다.

며칠 후 다시 들판에 나가 보았다. 이삭을 털어낸 볏가리가 군데군데 쌓여있다.

들판을 보며 넉넉했던 가슴이 갑자기 허전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가을바람처럼 휑한 느낌이 스며든다. 마치 내 인생의 가을마당도 비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고나 할까. 지금껏 우리가 자식을 기르고 장성시킨 후 떠나보내는 과정 같기에.

홀로 남겨질 것만 같은 외로움이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조금 후 쓸쓸함 보다는 풍요로운 마음으로 바꾸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있다.

거두어진 알곡은 이제 창고로 옮겨지듯 내 아들과 딸들도 어엿한 어른의 몫을 감당해내고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드나보다.

바닥을 드러내 보이던 논바닥에서도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머지않아 내 자식에게서 또 자식이 태어나 기쁨을 주리라는 상상을 해 본다. 잠깐 동안 가난했던 영혼이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참새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다.

저들이 빈 벌판에서 무엇을 먹으며 겨울을 살아갈까 하는 염려에 빠지곤 했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논둑 아래를 무심코 내려다보다가 신기한 일을 발견해 냈다. 그동안 잡풀더미인줄 알았던 곳에서 모든 떨기마다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낱알들이 수없이 떨어져 있었다. 새들의 겨울 채비는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단순한 판단이지만 그들의 둥지에도 삶의 풍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자연의 질서 속에도 이처럼 신비로운 조화가 있는데 하물며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부여되는 조건은 얼마나 더 유익한 것이 많을지 짚어 보는 계기였다.

이제 저 대지위에도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모든 것은 잠자듯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여 질 것이다. 그러나 지표면에 온기는 늘 깨어서 숨을 쉬고 있으며 봄은 또다시 찾아온다는 확실한 약속이 눈앞에 있다.

우주의 섭리가 경이롭다.

그 가운데 나도 함께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는다.

내 영혼도 깊어지는 가을과 같다. 그리고 그곳으로 차분한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가는 시간이다.

삶 또한 의연하게 영글어서 고운 열매를 달아보고 싶다.

겨울과 같은 인생으로 접어들어 갈지라도 보다 원숙한 인격체로 거듭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귓가를 스치는 가을바람이 차갑지 않다. 새로운 변화를 맛본다. 그 가운데 훈훈한 삶이 있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감사의 언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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