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차 한잔하고 가세요
따뜻한 차 한잔하고 가세요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11.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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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가을이 무르익으면 새벽안개가 짙다. 이산 저산 산 위에서 놀던 가을이 아래로 아래로 달려 내려올 무렵이면 양곡저수지 앞 은행나무들이 먼저 노랗게 물이 든다. 1년 중 가장 화려해지는 단 며칠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때맞춰 새벽길을 나선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아침 6시 반 경, 5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 속을 조심스럽게 기어가듯 해서 도착한 저수지에는 벌써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다. 아침 7시의 풍경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와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는 관광객들과 사진애호가들, 너 나 없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촬영장소를 물색하는 사람, 지지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안개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사람, 안개 낀 은행나무길에서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북적거린다. 아니다. 담뿍 낀 안개가 소리를 빨아들이는지 소음들은 잦아들고 사람들의 움직임 또한 몽환적이다. 꿈결 속 몽환적인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생각마저 잊게 하는 은행나무길을 무작정 사람들의 흐름에 기대어 걸어가 본다.

이곳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양곡 1리 주민들이 1975년 새마을운동의 하나로 은행나무 100여 그루를 심은 데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주변의 단풍든 가을 산을 배경으로 물 버드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운 양곡저수지는 샛노랗게 무르익은 은행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어디를 어떻게 구도를 잡아도 멋진 사진이 되는 명소 양곡 저수지. 단풍이 절정을 이룰 무렵의 새벽은 엄청 쌀쌀하다. 감기가 올 것 같이 목이 뻐근해지고 콧물도 난다. 나도 모르게 시린 두 손을 비벼대곤 했다. 더러 중무장한 사람들도 눈에 띄지만 거의 많은 사람이 떨며 웅크리고 있다. 심지어 지지대에 카메라를 올려놓은 한 여인은 담요를 뒤집어쓴 채 호수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겨울 외투를 입고 올 것을!' 후회하면서 입구 쪽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다가가 보았다.

<따듯한 커피와 차를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팻말을 옆에 두고 괴산사진작가회원들이 가스 불에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들은 내 고향을 찾아온 손님들이 웅크린 채 떨고 가게 할 수 없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예술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소문 난 곳이면 어디든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터라, 차 한 잔, 커피 한 모금의 위력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렇듯 커피 끓여 봉사하는 것에 열성적인지도 모르겠다. 퍼뜩, 愚公移山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긴다던가? 빛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일, 추위를 이겨내기 위하여 중무장까지 하고 나와서, 더구나 일회성이 아닌 꾸준함과 묵묵함으로 우직하게 대가도 바라지 않고 면면히 10여 년을 이어 온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조용한 변화를 이름이리라. 평범했던 작은 저수지인 양곡저수지가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그들에게 화답하기에 이른 것이다.

커피 한 잔을 얻어 들고 물러나면서 두 손으로 감싸 안은 따스함이 마음속까지 훈훈하게 전해진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된다던가?

작은 조약돌 하나가 수면 가득히 파문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훈훈한 감동도 파문처럼 번져가는 것. 사진작가협회 회원들의 마음이 아름다워서 더욱 문광저수지가 유명해질 것 같다.

“따뜻한 차 한잔하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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