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참나무
대왕참나무
  •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 승인 2023.11.0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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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바람에 날린다. 지난봄 교정에서 느꼈던 상큼한 봄바람을 잊을 수 없는데, 그새 바람이 스산하다. 세월이 참 빠르다.

`가을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오창호수공원에서`무대공연실기' 교과 버스킹이 있었다. 나는 자작곡 `대왕참나무'를 불렀다. 나뭇잎이 겨우내내 매달려 있는 대왕참나무의 이야기를 소재로 지은 노래이다.

전에 은여울중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땐 학교에서 자는 일들이 참 많았었다.

아이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야간에도 긴급히 조치해야 할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긴급히 조치해야 할 일들의 대부분은 아이들끼리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집착이나 미련을 줄일 수 있다면 갈등도 줄고 삶이 참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도 했다.

은여울중학교 교정엔 대왕참나무가 참 많다. 처음엔 그 나무가 대왕참나무인줄도 몰랐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웠기에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말라 비틀어진 대왕참나무의 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해가 마무리될 즈음이었다. 아이들이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에 비로소 여유가 생겨서였을 것이다.

눈 내린 어느 날, 가난한 성자의 모습으로 말없이 서 있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교정에 빙 둘러 심겨진 그 나무는 갈색 마른 잎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그 추운 겨울날, 그때까지 떨어지지 않은 잎들이 갑자기 한심해 보였고, 나무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보이는 것 같아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동안 그 나무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생님께 나무의 이름을 물었더니 대왕참나무라 일러주셨다. 나는 집착과 미련이 강한 저런 나무는 은여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 속내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설명을 해 주셨다.

꽃이나 과일, 나뭇잎이 떨어질 때 수분 증발과 세균 침투를 막으려고 나무는 얇은 막을 만든다는 거였다. 그런데 대왕참나무는 떨켜라는 그 막을 만드는 기능이 없어서 가을에 잎들이 떨어져 버리면 수분 증발이나 세균 침투로 나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무를 지키려고 잎들이 겨우내내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대왕참나무의 잎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게 나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얘기를 들으면서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내 자신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리고 갑자기 추해 보이던 대왕참나무의 잎들이 성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고 받았던 월계관도 대왕참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이었다니…. 추하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한없이 추하게 느껴졌는데,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대왕참나무의 자태가 또 한없이 웅장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하고 또 간사한가.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바람에 날린다.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대왕참나무의 잎들은 겨우내내 나무에 매달려 새봄을 기다릴 것이다. 자신을 키운 나무를 지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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