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의협에 휘둘리나
이번에도 의협에 휘둘리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10.2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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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우리나라 40개 의과대학의 신입생 정원은 3058명으로 2006년부터 18년째 동결 상태다.

증원 필요성이 수시로 제기됐고 정부가 시도하기도 했지만 파업을 앞세운 의사단체의 반발로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지난 2020년에도 정부는 감염병 대응체재 강화 등을 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으나 전공의 파업과 의사단체 반발로 무산됐다. 이 기간에 간호대 정원은 2배 이상 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다시 칼을 빼들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바닥 수준인 의사 수를 늘려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고 취약한 지방의료 기반을 확충하겠다고 나섰다. 의사와 병상이 없어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는 `응급실 뺑뺑이'와 제때 진단을 받기위해 병원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하는 `소아과 오픈런' 등을 방지하려면 의대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2025년부터 1000명을 늘리기로 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됐고, 지난 19일 대통령이 참석한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혁신전략회의'에서 구체적 방안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의사협회(의협)가 정부가 일방 추진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하겠다”며 파업까지 예고했던 터라 정부가 이날 의료대란을 무릎쓴 결단을 내릴 것인가가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었다. 역시 의협은 막강했다. 이날 구체적인 증원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증원 규모와 발표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전 정부에 비해 진일보 한 것은 사실이다. 이날 정부는 지방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지역·필수 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파격적인 재정 지원과 규제 완화로 국립대병원을 서울 대형병원 수준으로 육성해 의사와 환자의 수도권 쏠림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국립대 의대 정원의 40% 이상을 해당 지역 출신으로 선발해 지방에 정착하는 의사들을 늘리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의대 증원 불가피성을 거듭 피력한 점도 희망적이다. 대통령은 “지역 필수의료 체계 정상화는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이고, 그 필요조건이 의사 수 확대”라고 강조했다.

이날 전략회의에서 정부는 그동안 의협이 요구해온 사안에 대해선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호응했다. 의협은 의료인 과잉을 초래할 의사 늘리기 보다 낮은 수가와 의료과실에 대한 과도한 사법처리 관행을 개선해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날 복지부는 그동안 저평가돼온 항목을 찾아 수가를 인상하고 고난도·고위험 의료에 대해서도 보상을 늘리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또 의료인 형사처벌특례 범위를 확대하고 필수의료 분야에는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지원해 종사자의 민·형사 부담을 줄이겠다고 했다.

이제 공은 의협으로 넘어갔다. 의협은 이 나라 의사들이 저수가와 쟁송에 시달린다고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의사의 연봉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고, 이과계 영재들이 거의 수능 석차순으로 의대를 지망하고, 3억원 이상 연봉을 제시하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진료과를 휴진해야 하는 지방의료원이 숱한 것도 사실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않은 이유이다. 의협은 대통령과 정부가 의협의 요구에 성의를 보인만큼 한발 물러나서 합리적인 의대증원 방안 모색에 힘을 보태야 한다. 간호법 제정을 놓고 의료계 전반이 갈등할 때 누가 거부권을 행사해 의협의 손을 들어주었는가. 다음 달 2일 복지부와 의협이 만나는 의료현안협의체 논의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한다. 정부도 언발에 오줌누기 식의 소폭 증원에 그친다면 의협의 서슬에 도망다닌 전 정권과 다를 게 없다는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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