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와 애착
분리와 애착
  • 양 철 기 교육심리 박사·한솔초 교장
  • 승인 2023.10.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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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은 장기적 인간관계의 근본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정상적인 감정, 사회적 발달을 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한 명 이상의 주 보호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생겨난 부랑아와 고아들이 많은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겪자 UN에서는 심리분석가인 보울비(J. Bowlby)에게 의뢰해 이 문제를 연구하도록했는데, 보울비는 3세 이전의 애착 관계가 평생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였다.



# 디태치먼트

2014년에 개봉한 토니 케이 감독의 영화 `디태치먼트(Detachment)'는 미국 저소득층 지역 공립학교의 무너져버린 교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제시할 수 없는 현실, 무너지는 교사 등 교육문제를 중심으로 삶의 분리와 애착을 담고 있다. 유명 배우인 에이드리언 브로디(A. Brody)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나체와 욕설이 난무하며 교육 시스템과 학생과 교사 모두의 복잡한 삶의 층위를 벗겨내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담겨 다소 보기 불편하다.

영화의 제목인 `디태치먼트(detachment, 분리)'의 반대말은 `어태치먼트(attachment, 애착)'이다. 주연 브로디는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아다니며 학생이나 동료들과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는 기간제교사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브로디는 각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저소득층 지역 학교에 한 달간 일을 하게 된다.

브로디는 어린 시절 엄마의 자살로 인한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처럼 상처를 껴안은 채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하고 있다. 자신도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과 혼란에 싸여 있는데 어떻게 누군가를 보살피고 가르칠 수 있을까.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원인들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 문제들은 삶 가운데서 불쑥 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든다. 타인에게 날을 세우게 만들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작은 공간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게도 한다. 그들 각자는 분리되어 있다.



# 분리에서 애착으로

영화 디태치먼트가 브로디를 통해서 건네는 하나의 큰 상징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상처가 없고 밝으며 활기찬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자신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하겠다는 영웅적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각자의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교장이건 교사건 학생이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사람들이다. 자신 외에 다른 타인의 삶을 돌볼 여력도 없고 그 정도의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브로디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런 브로디는 분리와 애착사이에서 방황하다기 가르치던 학생의 죽음을 통해 서툴기는 하지만 상처받은 인물들과 애착을 형성해간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학생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애착을 형성한다. 자신에게 애착을 건네는 상대로부터 도망치거나 내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분리가 아니라 애착을 선택한 것이다.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 ealer)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지만 그런 우리도 타인을 도울 수 있다. 내가 어디로부터 분리되었는지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에게 애착을 건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영화 속 배우 브로디의 눈은 슬픔과 고독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눈빛만큼이나 이 영화는 슬프고 고독하다.

2023년 뜨거웠던 여름, 아스팔트를 녹일듯한 열기 위에서 몸부림쳤던 여름,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시나브로 여기 와 있다. 이 가을, 무거운 마음으로, 불편한 마음으로 영화 한 편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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