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소’ 오명부터 씻으라
‘출장소’ 오명부터 씻으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10.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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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각종 의혹과 자격 논란으로 사실상 부적격 판정된 인사를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 강행한 것이 벌써 16번째에 달한다.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오만과 고집불통 인사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2019년 7월 16일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원내대변인 명의로 이런 요지의 논평을 내놨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하자 쏟아냈던 반응이다.

자유한국당에서 명패를 바꾼 국민의힘이 집권한 지금 국회와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존중을 받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내로남불 식 비판과 구차한 변명이 교차하는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고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임명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이번 정권 들어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한 18번째 인물로 기록됐다. 그는 군사쿠데타를 옹호하고 일제 식민통치를 긍정하는 발언 등으로 야당으로부터 헌법을 부정한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다.

과거 국민의힘이 그토록 비판했던 전 정권의 불통인사가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고스란히 재연되는 형국이다. 주고받는 언사도 입만 달라졌을 뿐 토씨하나 바뀌지않고 동일하다. 국민의힘은 신 장관을 “정부 정책 기조와 국정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해 낼 적임자”라고 평가했고 민주당은 “청문회에서 인사 참사임이 명백해졌는데도 기어코 고집을 부리는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에 기가 막힌다”고 논평했다.

엇그제 사퇴한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는 엽기 수준이다. 그는 청문회 도중 야당 의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리를 무단 이탈했다가 다음 날에도 참석하지 않아 줄행랑 논란에 휩싸였다. 후보자가 청문회를 보이콧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한다. 그는 이른바 `주식 파킹'으로 공직자 백지신탁제도를 변칙으로 피해갔고 회사 경영권 확보를 위해 법인자금을 동원했다는 의혹 등을 받았다. 하지만 자료제출 요구는 거부했고 해명은 군색했다. 그 마지막 전략이 36계 였다. 일개 장관 후보자가 입법부가 주관하는 청문회 제도를 정면으로 거부한 최악의 선례가 만들어졌지만 국민의힘은 당사자를 비호하기 바빴다. 스스로 국회의 권위를 실추시킨 일종의 자해 행위였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의 17% 격차 참패는 유권자들의 혀를 차게한 이 장면에서 완성됐을 지도 모른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대다수 언론이 이번 구청장 보선을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라고 평가한다. 정책과 조언으로 정권을 뒷받침 해야할 국민의힘의 책임이 크다. 국민의힘은 자당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재보선에는 후보를 내지않기로 한 당규를 깨고 원인 제공을 한 당사자를 재공천 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 석달만에 후보를 특별사면한 대통령실의 의중을 좇아 무리수를 뒀다가 낭패를 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구청장 보선이 내년 총선의 수도권 판세를 가늠할 바로미터라고들 하지만 국민의힘에겐 반전의 기회도 될수 있다. 변화무쌍 민심의 속성이 재차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약을 보약으로 바꾸는 기적은 `임명직 당직자들만의 사퇴' 따위의 어줍잖은 처방으로 이루기는 어렵다. 대통령실은 “야당 텃밭에서 진 선거를 침소봉대할 것 까지야”라는 반응을 내놨다고 한다. 패배한 국민의힘의 자성의 목소리보다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저자세가 더 부각되는 이유이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실의 한가로운 인식을 두드려 깨울 각성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도 곡소리가 날 공산이 높다.

유권자들은 대통령실의 출장소 정도로 격하된 국민의힘이 쇄신의 주체가 돼 역량을 발휘할 지 의구심을 벗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을 혁신할 기구를 출범하고 인재영입을 서두르겠다는 쇄신책을 밝혔으나 여당의 위상을 세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통령실의 눈치만 보는 수족으로 전락했다는 오명부터 벗으라는 말이다. 그 첫걸음이 집권정당에 걸맞는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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