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왔다 가는 인생
괜히 왔다 가는 인생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10.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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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차반 인생을 살다가 종교적 진리에 눈을 떠 청정한 삶을 찾아 불세출의 성인이 된다. 그는 `참회록'에서 이 회심의 내면적 과정을 특유의 명문으로 잘 풀어낸다.

그는 출세, 명예, 이성(異性)과 같은 외부 대상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차일피일 미룬다. 그는 외부에 대한 관심을 접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집착하고 이를 즐긴다. 그는 이런 자신에 대해 극심한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지금 말고, 조금 있다가'를 반복적으로 되 뇌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작업을 등한시한다.

뭔가를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지금의 상태가 편하고 좋아서 계속 머물게 하는 마음의 상태가 게으름이다.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7시에 알람이 울린다. 그런데 잠이 나를 자꾸 밑으로 끌어내린다. 일어나기는 해야 하는데 지금 자는 잠이 너무 달콤해서 그 유혹을 떨칠 수 없다. 씻고 밥 먹고 옷 갈아입는데 1시간 30분을 잡았는데 머리를 안 감고, 밥은 주스로 때우고, 옷을 대충 입고 가면 30~40분은 벌 수 있다. 그럼 30분만 더 자자.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행복하다. 잠자는 상태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마음의 작용, 곧 관성에 내가 먹히고 만다.

30분만 티브이를 보고 일을 해야지. 30분이 됐다. 지금 보고 있는 유 튜브가 너무 재미있다. 요거만 봐야지. 그게 끝나면 그와 연관된 다른 주제가 머리에 떠오른다. 뒤져본다. 그게 끝나면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눌러 화면의 노예가 된다. 화면에 매여 있는 동안 머리는 거의 스톱 상태이다. 습관적 관성의 지배를 받아 그저 수동적 상태가 되어 있다. 뭘 새로 하는 건 거의 가능하지 않다. 두어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시간을 죽이고 나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게으름은 인간을 나락으로 몰고 간다. 영화 `세븐'에서는 연쇄살인마가 철학적·종교적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 범인은 성서에 나오는 7대 죄악에 해당하는 인물을 해당 죄목에 심하게 빠지게 해서 죽인다. 그 중 나태해서 살인의 대상이 된 인간은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게 묶여 1년 동안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 찍혀가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감독은 나태가 몸과 마음을 썩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걸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라서 극단적으로 표현을 했지만 게으름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하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자신이 아테네 시민들의 무지를 자각하게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그는 살찐 암소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것처럼 아테네는 몸집이 너무 커져서 게으르게 누워 졸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그는 소의 등에 붙어 있는 등에가 소의 잠을 깨우는 것처럼 대화를 통해 아테네 시민의 잠자는 영혼을 두들겨 깨우는 과업을 부여받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의 나태함을 퇴치하여 깨어 있는 영혼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치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독배를 들고 생을 마감한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선택한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선택은 잠자는 영혼을 깨어 있게 만드는 일이 목숨을 바칠 만한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부처 열반 시 제자들이 세존께서 돌아가시면 우리는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느냐고 슬퍼하자 부처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너 홀로 법만을 의지하고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

게으름은 자신이 빠져 있는 관성과 타성의 늪이다. 여기에서 몸을 떨치고 일어나지 않으면 괜히 왔다 가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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