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무의 신을 찾아뵙다
조선 문무의 신을 찾아뵙다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3.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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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때는 바야흐로 아름다운 10월을 지나고 있는데 중앙정치나 국정운영에 관한 뉴스를 보면 치세(治世) 같기도 하고 난세(世) 같기도 합니다. 여야 막론하고 인사의 난맥상은 분명해 보입니다.

1일 국군의 날에서 `무(武)'를, 9일 한글날에서 `문(文)'을 생각해 봅니다. 어수선한 정국을 보고 있자니 하도 답답하여, 선대의 위인들로부터 문무의 모범을 찾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난세에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을 바치신 무신(武神이자 武臣)과 치세에 훈민정음을 통해 민족의 얼을 깨치게 한 문신(文神이자 文臣)이 마침 우리 고장에 있어 가을볕을 벗 삼아 찾았습니다. 동선에 따라 그 위인들은 김시민, 정인지, 임경업이었습니다.

먼저, 김시민(金時敏) 장군의 묘소가 있는 충민사에 들렀습니다. 괴산읍에서 감물면 가는 길목의 달천(達川) 강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38세에 숨을 거두었는데 이순신 장군과 같이 충무공 시호가 내려졌으니 해전의 이순신과 같이 육전의 공적을 매우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충청북도 기념물로 꽤 단정히 보존되고 있는데 묘소를 등지고 바라본 달천의 물줄기는 유유하고 묘 주변을 지키는 모과의 향기가 가을바람에 실려 향긋하니, 김시민 장군이 지켜낸 난세였기에 가능한 지금의 호사(豪奢)입니다. 따로 찾는 이가 별로 없고 본관이 구 안동이시니 필자 어머니의 조상께 인사드린 것으로 하여도 필자의 추모(追慕)를 대견해 하실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괴산 감물에서 충주에 가까운 불정면의 끝동네 외령리로 가면 정인지(鄭麟趾)의 묘소가 있습니다. 충청도 관찰사로 계실 때 특히 눈여겨본 풍수터라고 합니다. 400미터 내외의 산들이 주변을 감싸고 마을과 묘소가 있는 곳이 작은 분지 형태입니다. 마찬가지로 충청북도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는데, 개방을 하고 있지 않아 직접 묘소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마을 한편에서 떨어져 보니 왕릉에 이를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세종대왕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대학자이자 태종대에서 벼슬을 시작하여 세조대에 이르기까지 정승을 지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치세에 학문과 권력을 모두 겸하였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끝으로 정인지의 묘소에서 충주로 들어가면 남쪽 외곽 풍동마을에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묘소가 있습니다. 충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봉우리 정상에 위치하면서 괴산에서 내려온 달천이 남한강으로 합수되는 탄금대 전의 이 풍동과 단월동에서 S자로 굽어 흐르는 지형입니다(물동이지형). 동남쪽 멀리로는 월악산 정상 영봉(靈峯)을 볼 수 있는 명당입니다. 역시 충청북도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는데 이 좋은 터를 찾으니 아무도 없고 가을볕과 솔향을 벗 삼아 임경업 장군을 추모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명-청나라 교체기에 병자호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셨으나 정쟁에 희생당하고 고향인 충주땅에 묻히셨습니다.

조선을 지킨 문무의 위인들께서 찾아온 먼 후손에게 뭐라 하셨을까요. 난세에 지킨 나라인데 이 좋은 치세에 무엇하는 것이냐고, 왜 난세를 만들고 있냐고 염치를 알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위인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본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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