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사마귀
매미와 사마귀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3.10.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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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주말 드라마가 끝나갈 즈음이다. 거실 베란다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다가가 살펴보니 사마귀가 매미를 물고 방충망에 붙어 있다. 사마귀의 억센 턱에 꼼짝없이 잡혀 죽어라 울어대고 있는 매미, 리듬의 강약 없이 마치 쇠파이프를 자르는 기계톱 소리처럼 높게 이어지는 소리는 차라리 비명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소리가 갑자기 시작된 것으로 봐선 앉아 있는 매미를 사마귀가 발견하고 덮친 듯싶다.

매미는 온종일 짝을 찾다 지쳐 방충망에 앉아 새어 나오는 불빛에 위로받으며 잠깐 쉬려고 했을까?

나름대로 상황 파악을 끝낸 나는 반사적으로 매미를 살리려고 방충망을 툭 쳤다.

거대한 인간의 등장으로 깜짝 놀란 사마귀는 얼른 도망가고 그 틈에 매미는 사마귀의 눈을 피해 안전한 데로 숨어버리는 게 내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매미의 비명도, 단단히 움켜잡고 있는 사마귀의 톱니 다리도 변함이 없다. 딱밤 주듯 가운뎃손가락으로 세게 튕겨도 봤지만 끄떡도 안 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빗자루로 쓸어도 보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도 보고 급기야는 진공청소기를 초강력 단계로 놓고 빨아들여 보아도 사마귀는 매미를 물고 있는 턱도 방충망에 걸고 있는 다리털도 필사적이다.

이쯤 되니 문득 사마귀에게도 그만큼 절박한 어떤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든 일은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당장 매미를 구해줘야 한다는 것밖에는 다른 생각이 안 났던 것 같다.

땅속에서 무려 7년을 기다리고 나온 매미가 아닌가. 종족보존의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을 테니 그것 또한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가 무슨 권리로 둘 사이에 개입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슬그머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잔혹한 장면을 계속 지켜볼 수 없어 그만 안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래! 어쩌면 이 사냥이 한 달 만에 처음 성공한 것일지 몰라. 지난 폭풍우와 연일 이어지는 이상 기온에 사마귀가 몇 날 며칠을 굶었을지 속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매미는 매미대로, 사마귀는 사마귀대로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 삶의 한 장면이었을 뿐, 처음부터 나의 개입은 여지가 없던 것이었다.

자연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한치의 삐걱거림 없이 굴러간다.

짧은 소견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애쓴들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전에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애면글면 동분서주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남편과 가끔 충돌이 있었다. 진로 문제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쟁점에서 벗어나 말투나 태도 등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중간에서 화해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었다. 설득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집을 피워 사태가 더 나빠진 적도 많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였다는 걸, 차라리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며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옳았다는 것을. 그 후로는 결자해지,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전혀 개입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서로 선 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지내게 된 것 같다. 그게 순리이리라.

얼마나 지났을까. 길어야 5분? 조용해져서 나가 보니 방충망이 비었다. 매미와 사마귀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도 그들의 치열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밤공기가 서늘하게 불어온다. 또 한 번의 깨달음을 던져주고, 혹독하게 덥던 여름도 저들처럼 물러가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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