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5번
805번
  • 강석범 청주 복대중학교 교감
  • 승인 2023.09.2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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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 복대중학교 교감
강석범 청주 복대중학교 교감

 

“아빠 나 805번이에요.” 2층 관람석에 앉아있는 내게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805번은 아들의 콩쿠르 연주 순서다. 대개의 음악 콩쿠르는 한번 연주로 경쟁을 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예선과 결선을 나누어 경연을 치르기도 한다.

미술을 전공한 나는 음악 콩쿠르가 사실 번잡하게 느껴진다. 미술의 경우 실기 경연장에 들어가면 최소 3~4시간 오로지 참가자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한다. 그에 비해 음악은 매니저처럼 부모님이나 지도교사가 참가자에게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콩쿠르는 강당 한쪽에 샵을 차려놓고, 메이크업 전문가들이 얼굴, 머리까지 연예인 단장하듯 꾸며주기도 한다. 그 모습 또한 재밌는 콩쿠르 광경의 일부이기도 하다.

어쨌든 오전 경연을 거쳐 결선에 오른 친구들에게 새로운 경연 번호가 부여되는데 공정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유인지 이때부터는 이름 대신 참가번호로 호명을 한다.

이곳 음악 공연장은 보기 드물게 멋지다. 2층 관람석의 가파른 각도는 처음 방문한 사람들을 당황 시키기도 하지만 넓지 않은 공간을 기막히게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비교적 자주 콩쿠르경연장으로 쓰이면서 여러 번 와본 덕에 출연자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일찌감치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추위를 느낄 정도로 강력한 냉방이 자칫 경연자들이 손을 경직시킬까 걱정도 됐지만 밖의 무더위에 지친 관람객들에게는 큰 호강이다.

“다음 연주자는 805번입니다.” 사회자의 호명과 동시에 나는 휴대폰 동영상을 켠다. 심호흡하는 아들의 등짝이 크게 한 번 울렁인다. 아무리 여유 있는 척해도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다른 때보다는 제법 호기롭게 여유를 부린다. 아마도 자기암시겠거니 싶다.

`꽝~~~ 꽈 광~~~' 시작과 동시에 천둥 치듯 건반을 내리친다. 아뿔싸~ 여지없이 앞 두 마디 연주에서 소리가 빠진다. `어휴~ 저기서 또….' 지겹도록 아이와 같이 음악을 들어서인지 내 귀도 심사위원 못지않게 열려 있다. `땡~~'하는 `콜벨' 소리와 함께 2분여간의 연주가 끝났다. 콩쿠르에서 대개 연주 시간은 2~3분 내외다. 아들 녀석 뒤로 몇 명의 학생 연주를 끝으로 모든 경연이 끝났다.

즉석에서 심사위원들의 심사표가 정리되고 잠시 후 현장에서 결과를 발표한다. 참가자와 부모, 선생님들이 강당 안에 모여 순식간에 강당 입구부터 무대 앞쪽까지 관객들로 넘친다.

지금부터 콩쿠르 결과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호명된 학생들은 차례로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특별상 청주시장상 수상자입니다. `○○4번' 호명과 동시에 `꺅~ 꺅~' 방청객에서 환호가 요란하다. 우수상 청주교육장상 `○○2번', 다음 최우수상 충청북도교육감상 `○○6번', 아직 805번 호명은 없다. 고개 들어 입구 쪽을 흘낏 바라봤다. 아들 녀석이 무표정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이제 `대상'만 남았다. 녀석이 분명 대상 받을 이유는 없을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진작 자리를 털고 나갔어야 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 아이와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건 정말 불편하다. 머릿속이 한참 복잡한 와중에 대상이 호명된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상-충청북도지사상을 발표합니다.' 대상은~ `805번!' 순간 경연장 입구에 있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요란한 박수 소리와 환호…. 녀석이 무대 인사를 위해 총총걸음으로 내려간다. 동시에 내 휴대폰 셔터 속도도 덩달아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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