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 저수지 백야리에서
삼형제 저수지 백야리에서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9.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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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바다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한 유원지도 없는 이곳 음성에서 저수지는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휴식을 주는 곳이다. 특히 음성만큼 저수지가 많은 곳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성의 저수지 주변에는 예쁜 펜션이나, 카페, 음식점들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늘은 백야 저수지를 찾았다. 삼형제 저수지 중 하나인 이곳은 금왕읍에 속해 있다. 길쭉한 일자형으로 조성된 저수지다. 바다에 온 듯 가슴이 뻥 뚫릴 만큼 드넓다. 특히 이곳은 저수지 좌우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좋다.

가끔 이곳을 찾는다. 어떤 때는 저수지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둘레길 주변의 카페에서 밥을 먹기도 하며, 차를 마시기도 한다. 지난여름, 문우와 이곳을 걸었다. 둘레길 초입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서 이렇게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한 두 시간을 걷고 난 다음에는 언제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먹곤 한다. 그날도 우리는 무성한 칡덩굴의 배웅을 받으며 둘레길을 즐겁게 걸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칡덩굴의 세상이다. 예전 같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 캐 갔을 것이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칡은 간식으로 또는 주린 배를 채워주던 양식이 되곤 했다.

한낮의 태양이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땀범벅이 된 우리는 에클레시아 카페가 보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에어컨이 켜진 카페 안은 시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니 그제야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카페 안에서 바라다보는 백야 저수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햇빛 때문일까. 은빛 물결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시원한 곳에서 보니 저수지의 물결이 파도인 듯 착각이 들 정도다. 그날 우리는 에클레시아를 끝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백야 저수지 주위에는 에클레시아 카페 말고도 라비앙로즈 카페가 있고 펜션도 있다. 무엇보다 백야 저수지 끝에는 백야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더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음성 사람이라면 이곳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 싶다. 백야자연휴양림은 숙박시설 외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 백야 수목원이 숨어있다. 계절마다 바투 피어나는 수많은 꽃과 나무 사이를 걷다보면 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또한 봄부터 여름까지 계곡에서는 개구리 합창단의 공연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나무 위에서도 새들이 화음을 넣어주어 더욱더 귀가 맑아진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수목원의 제일 높은 지대에 이르면 유리온실을 만난다. 그곳에서는 따뜻한 남해안이나 제주도에서나 자라는 식물들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 사실 백야자연휴림과 백야저수지는 소속리산과 보현자락에 있어 그 시원함과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할 수 있다. 바쁜 일상 하루쯤은 백야자연휴양림에서 가족들과 밤을 지새우며 고기도 구어 먹으면서 그동안 미뤄놓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아도 좋고, 그 다음 날 백야 수목원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부려 놓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내키면 휴양림을 감싸고 있는 산 정상에도 올라가 탁 트인 산바다를 만나는 일도 추천하고 싶다.

어느새 무덥던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득한 가을이다. 가을에는 왠지 친구도 그립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그건 아마도 봄, 여름을 열심히 살아 온 때문은 아닐까. 결실의 계절 가을, 시월에는 오래 된 친구들을 백야자연휴양림으로 불러내어 회포나 풀어야겠다.

휴양림을 나와 백야 저수지를 지나가는 길이다. 저 멀리 저수지 위로 작은 집들이 둥둥 떠 있다. 낚시꾼들의 휴식처, 수상좌대가 한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물이 얼마나 맑은 걸까. 물속으로 쌍둥이 좌대가 거꾸로 매달렸다. 삶도 저렇게 풍경이 될 수 있을까. 벌써 시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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