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살고 있는 옛이야기
‘오늘’에 살고 있는 옛이야기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8.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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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흔히들 옛이야기는 살아 있다고 말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의 특징에 기반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해준 `옛날 옛적에 말야 ~'와 엄마가 나에게 해준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 이야기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할머니가 가졌던 삶에 대한 주안점과 엄마가 품었던 현실에 대한 시선이 같지 않기에 그렇다.

같은 종교의 규율 아래 있는 서유럽 문화권 옛이야기를 보자. 프랑스의 샤를 페로(1628~1703)와 독일의 그림 형제(1786~1859)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그들의 글에는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지역의 다름뿐 아니라 17세기와 19세기라는 시간적 간극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채록 목적의 차이도 볼 수 있다

<빨간 모자>는 두 작가의 책을 낸 의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이야기다. 샤를 페로는 1697년 <어미 거위 이야기/부북스>라는 동화집을 펴낸다. 이 책은 그의 셋째 아들인 디망꾸르의 이름으로 쓴 `공주님께'라는 헌사문으로 시작한다. 그 연유를 후대에서 해석하기로는 구어체가 주를 이루는 구비문학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던 시대를 관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본다. 더불어 그는 어린이들이 읽기에 잔혹하다고 여긴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순화 각색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그러기에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와는 이야기의 끝이 다름을 독자들은 알 수 있다.

숲에서 만난 낯설지만 친절한 늑대에게 빨간 모자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 준다. 목적지인 할머니 집의 위치까지도 말이다. 엄마가 당부했던 말들은 까마득히 잊은 채 해찰까지 하며 심부름 길을 간다. 빨간 모자보다 먼저 도착해서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는 할머니 분장을 하고 기다리다 빨강 모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까지 성공한다. 그다음은 우리가 알고 있듯 `냉혹한 늑대는 빨강 모자를 덮쳐 먹어 버렸습니다'라며 끝을 맺는다. 페로의 <빨간 모자>는 잔인하거나 성적인 것을 삭제해서 서사는 간결하지만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페로가 살던 시대와 환경이 스며 있는 `달콤한 늑대가 가장 위험한 늑대'라는 교훈을 곁들인 이야기다.

반면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는 사냥꾼이 나타나 늑대의 배를 가르고 할머니와 빨간 모자를 구해준다. 한발 더 나아가 할머니와 빨간 모자는 다시 찾아온 늑대를 굴뚝으로 유인해 뜨거운 물에 빠트려 죽임으로 응징하기까지 한다. 그림 형제는 민담을 채록하는 데 있어 하나의 가감도 없이 민중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는다고 밝혔다.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잔혹하고 노골적인 성 묘사가 나오는 이유이다. 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가 아닌 민중의 날 것 그대로를 담는 민중의 정신이 드러나는 문학을 추구한 당대의 문학관의 영향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형제의 옛이야기는 그 이후 어린이들을 위해 7차례의 판본 수정을 하며 211편의 이야기가 실린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렇듯 옛이야기는 당대의 정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의 일들이 담겨 전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구전이 아니라 문자로 옛이야기를 이어간다. 채록을 통해 문자로 남겨진 샤를 페로가 살던 17세기의 프랑스의 빨간 모자와 19세기 독일에 살던 빨간 모자는 작가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지며 그 시대에 영원히 머물며 살고 있다. 지금, 21세기! 빨간 모자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오늘을 보내며 살고 있다. 패러디라는 문학작품으로!

옛이야기가 `오늘'에 살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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