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 찬가
아모르파티 찬가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8.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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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아모르파티! 느낌표 같은 친숙한 외래어입니다.

히트가요 제목이 된 덕분에 널리 알려진 듣기만 해도 즐겁고 정겨운 말입니다. 가사와 멜로디가 낙천적이고 경쾌해서 Amor Fati를 Amor Party로 착각하는 이들도 허다했지요.

아시다시피 아모르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運命愛)'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입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신의 철학 마지막 결론이 아모르파티였다고 술회해 유명세를 탔지만 일반인들에겐 생경한 말이었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깊게 배인 아모르파티란 외래어가 김연자의 히트 곡 `아모르파티'로 인해 대유행어가 되었으니 노래와 예술의 힘이 실로 큽니다.

저도 한동안 아모르파티를 흥얼거리며 개똥철학을 하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그렇듯 아모르파티란 노래가 2010년대 후반부를 풍미했지만 2013년 5월에 발표된 후 5년간은 버림받은 사장된 노래였습니다. 그랬던 노래가 5년이 지난 2017년에 대박이 났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의미심장합니다.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는 이건우 작사가의 맛깔나고 세련된 노랫말과 윤일상 작곡가의 트로트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 결합된 중독성이 강한 곡이 결합해 시쳇말로 가사 좋고 멜로디 좋아 히트는 따 논 당상이었습니다.

헌대 그게 아니었습니다. 김연자가 평소에 이은미의 히트곡 `애인 있어요'를 작곡한 윤일상 작곡가를 좋아해 그와 친분이 있는 소속사 대표 신철에게 부탁해 받은 곡인데 막상 받고 보니 빠른 템포의 EDM이고, 가사가 너무 길고 숨이 가쁜 노래인데다 성인가요(트로트)에 맞지 않는 청년층의 노래라 여겨 음반만 내고 무대에서 부르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랬던 아모르파티를 김연자가 2016년 7월 10일 방송된 KBS 1TV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망토를 잡고 도는 안무와 마이크를 멀리 떨어뜨리는 퍼포먼스로 미친 듯이 노래해 열광의 도가니로 만듭니다.

이 영상이 다음 해인 2017년 3월에 추천 트윗이 올라와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퍼져 그 해 음원 차트 트로트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가요사에 길이 남을 역주행 대박을.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 같은 내로라는 출연자들과 함께 부르는 엔딩 곡이 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아모르파티를 빼닮은 노래였습니다.

우리네 삶도 그와 같아서 힘들어도 살만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포기했던 사람과 과업과 인연들이 우연찮게 기쁨이 되고 보람이 되기도 하니까요.

전쟁이 터져 젊은이들이 모두 징집돼 전사했는데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는 바람에 징집을 면한 어떤 젊은이는 고을수호자가 되어 잘 살았다는 옛 고사처럼 말썽꾸러기 아들이 출세해 자랑이 되기도 하고, 좌천된 게 되레 축복이 되기도 하고,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는 역주행 대박들이 심심찮게 나곤 합니다.

살다가 마주치는 실패와 배신, 사고와 치병, 실연과 이별 등의 불운이 약이 될 때도 있으니 말입니다.

잘 된다 잘 된다하면 안 될 것도 풀리고, 안 된다 안 된다하면 잘 될 것도 꼬이는 게 인생사입니다.

니체의 운명애를 학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니 몰라도 좋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긍정하고, 맺은 인연들을 축복이라 여기며 즐겁게 살면 그게 바로 아모르파티입니다.

우리 노랫말처럼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삽시다. 덕감사(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와 아모르파티를 입에 달고.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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