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감상
경치 감상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8.2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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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는 한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심지어는 눈을 감고 있거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보곤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림으로 그려 낼 수 있다. 이것을 능수능란하게 잘 하는 사람이 화가 아니던가?

그런데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보이는 것만 그려가지고는 소기의 성과를 이루기 어렵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소리라던가 맛이라던가 느낌, 이런 것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병연(炳淵)도 그것이 무척 궁금하였다.


경치 감상(賞景)

一步二步三步立(일보이보삼보립) 한 발 두 발 세 발 걷다가 서서 보니
山靑石白間間花(산청석백간간화) 산은 푸르고 돌은 희고 듬성듬성 꽃이 피었더라
若使畵工摸此景(약사화공모차경) 만약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 본떠 그리게 하면
其於林下鳥聲何(기어임하조성하) 숲 아래서 들리는 새소리를 어찌 그리려는지.

평생 삼천리 방방곡곡을 떠도는 방랑자로 살았던 시인에게 걷기는 가장 익숙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날도 시인은 걷고 있었는데, 그 지점이 마침 산이었다. 묵묵히 무심하게 하나 둘 셋 발 걸음을 떼다가 멈춰 서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걷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 왔다. 계절은 명확하지 않지만 녹음이 짙은 시기임은 분명하다.

시인은 주변 경치를 보고 그에서 감흥을 느낀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경치를 세세히 묘사하기보다는 개략적으로 뭉뚱그려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 푸르고 돌은 하얗고 여기저기로 듬성듬성 꽃이 피었다고만 한 것은 시인의 의도가 경치를 묘사하고자 하는 데 있지 않음을 말해 준다.

경치에 감흥이 일었으면 저렇게 간단하게 말할 시인이 절대 아니다. 시인은 경치를 시로 옮길 생각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생각에 앞서 시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마침 숲 아래에서 들려 온 새 소리가 불러 낸 궁금증이었다.

푸른 산과 하얀 돌 그리고 활짝 핀 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니 그림 솜씨 있는 화공이 그것들을 못 그릴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들리는 저 새 소리는 어떻게 그려 낼런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산과 돌, 꽃만이 경치가 아니고 귀에 들리는 새 소리도 시인이 감상하고 있는 경치에서 빼 놓을 수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시인이 말한 화공은 결국 자기 자신인 셈이다.

과학, 철학, 문학, 예술 할 것 없이 세상 일의 모든 방면에서 강조되는 것이 창의성이다. 이 창의성이 발현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궁금증이다. 사소한 궁금증과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획기적인 창의로 귀결되는 것은 인류 역사가 잘 말해 준다. 커다란 창의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궁금증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매우 유효하다. 무기력에 빠지기 쉬운 반복적 패턴의 일상에서 흥미로움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이 바로 궁금증이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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