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이기는 방법
재판에서 이기는 방법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10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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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정 택 수<청주지방법원 공보판사>

어느 가을날 청주지방법원 제3호 형사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증인(證人)으로 출석한 한 여인이 있었다. 공소장에 의하면 전 남편인 피고인이 술에 취해 밤에 찾아와 그녀를 폭행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법정에 등장하기 전에 피고인은 그녀와 다시 결합하려고 하였는데, 다른 남자와의 관계가 밝혀져 화가 났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재판장인 나로서는 두 사람의 인생살이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이 서로 하는 말을 조심스럽게 들어보기로 했다. 증인신문(證人訊問)이 시작되고 변호인이 증인에게 물을 차례가 되었다. 그 변호인은 아마 청주가 아니라 멀리 서울지역에서 온 젊은 변호사로 기억한다.

"증인의 직업이 뭡니까" "회사원입니다." "자세히 말하세요."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을 하는 그런 겁니다." "아! 그럼 노다네요. 그럼 증인이 사귀고 있는 남자도 같은 노다 맞지요" 순간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하였고, 뒤에서 기다리던 다른 변호사들과 방청객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한마디 속어(俗語)로 증인과 증인이 사귀는 남자를 한꺼번에 심각하게 비하(卑下)하였다. 증인이 보잘것 없는 일을 하며 보잘것 없는 사람과 사귀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평소 피고인이 이혼한 증인을 돌보고 지냈다는 점을 재판장에게 인식시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그 방법은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또 변호인의 그런 의도가 성공하였다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 무례하였다.

세상사는 게 다 그렇듯이 재판에도 예(禮)가 중요한 것 같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였던가. 그처럼 격(格)이 있는 태도가 재판에서도 돋보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자세로는 결코 재판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지 못한다. 타인을 한없이 폄하(貶下)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무례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고한 인문적 교양과 학식이 재판에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기운(氣運)을 전해 받아 느낄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온화(溫和)와 관용(寬容)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기의 주장을 절제되고 품격이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아울러 상대방이 자기와 다른 주장에 펼칠 때도 참고 기다리며 경청하는 것이다. 서로의 이익을 두고 다투는 재판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때면 다른 장소에서보다 더욱 훌륭하게 빛이 나게 된다.

온화하고 격이 있는 자세는 재판장에게도 당연히 요구된다. 과거에는 사건이 많고 바쁘다는 이유로 간혹 사건 당사자들에게 잘못 대하는 재판장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고, 최근 많은 법관들이 이런 점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 그래서 재판장의 법정언행을 개선하기 위하여 법관들은 필요한 교육을 받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바람직한 재판진행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의 주인공들이 바뀌지 않고서 재판장의 노력만으로 좋은 결실을 맺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도 서로간의 분쟁이 격조 있는 법정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해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모든 국민들과 법관이 다함께 이런 희망을 가져봄직도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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