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년 학교 역사 … 근대교육 태동지
127년 학교 역사 … 근대교육 태동지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8.23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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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보물 프로젝트 청주의 교육유산
⑤ 1896년 청주 최초의 학교 주성초등학교
학교 강당→도서관→체조경기장→주성교육박물관
인재 양성 요람 역할 … 1913년 첫 女 졸업생 배출도
100년 전 학생들 모습 빛바랜 사진 속 추억 고스란히
주성교육박물관.
주성교육박물관.
주성초 1907년 개교·청주농고 1911년 개교 당시의 교사
주성초 1907년 개교·청주농고 1911년 개교 당시의 교사
1907년 대한제국 교과서.
1907년 대한제국 교과서.
1917년 1922년가지 여학생 교실로 사용한 망선루.
1917년 1922년가지 여학생 교실로 사용한 망선루.

 

청주 근대교육의 태동지를 꼽는다면 주성초등학교다. 1896년 개교한 후 127년 동안 청주의 근·현대 교육을 담당하고 청주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으로 지금까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의 명성은 100년 전 지어진 주성교육박물관이 현대식 학교 건물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만큼 주성초등학교의 서사도 간단치 않다. 한때 1907년 청주 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것이 공식 기록이었으나 학교 자료를 수집하던 중 대한제국에서 발행한 관보 434호(1896년 9월 21일자)에 `청주군 공립소학교'가 개교했다는 공고 내용이 확인되면서 잃어버린 11년 역사 기록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127년 역사 속에는 조선이 해체되고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 그리고 해방 이후 격변의 시대가 담겨 있다.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다시 현대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이 청주교육의 변천과 긴밀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갑오개혁 이후 새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종은 1895년 전국 각 지방에 신교육을 담당할 소학교 설치를 발표한다. 이에 청주도 1896년 9월 17일 청주군 관아 부속건물에 청주군 공립소학교를 개교하면서 근대교육에 첫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대한제국은 국권을 잃었고, 식민지 교육이 필요했던 일본은 1907년 청주군 공립소학교를 없애고 청주공립보통학교로 개명해 개교한다. 이때 기록에는 1909년 160명이 학교에 다닌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학생 연령이 8세부터 18세까지 다양했고, 기혼자도 학교에 다닌 것으로 나타나 흥미롭다. 청주공립보통학교의 첫 졸업생은 1911년 배출이었고, 1913년에는 첫 여성 졸업생도 배출해 여성교육도 미흡하나마 이루어졌다.

학교 교육이 자리를 잡으면서 청주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학생 수가 늘어나자 당시 청주읍성 안에 있던 망선루를 수리해 학교 사무실(1914)로 사용했고 1917년부터 망선루가 해체되는 1922년까지 여학생 교실로 사용했다. 1928년 기록에 남자 18학급, 여자 6학급으로 늘려 운영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자녀 교육열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1923년 주성초 강당.
1923년 주성초 강당.
1933년 이후 모습(뒤쪽 옛 강당).
1933년 이후 모습(뒤쪽 옛 강당).
1939년 주성초 전경.
1939년 주성초 전경.
1967년 도서관 활용.
1967년 도서관 활용.

 

청주공립보통학교는 1922년 지금의 자리에 학교 건물을 신축해 이전한다.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위해 지역민들은 건물 개축과 신축 비용 지원에 아낌없이 후원한다. 주성교육박물관 건물도 1923년 지역 유지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내 강당을 신축했다. 옛 사진 속 학교 전경을 보면 허허벌판 속 일자(-) 형 교사와 근대건축 형태로 창문을 낸 강당이 100년 학교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흐릿한 옛 사진에서 쉽게 주성초등학교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건축 원형이 잘 보존된 강당의 모습 때문이다. 100년 세월에도 자리를 지킨 옛 강당은 도서관으로, 체조경기장으로 활용되다가 2001년 2월 주성 교육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이때 보수공사를 하며 강당 앞쪽에 있던 연단을 없애고 전시장으로 꾸몄고, 대부분 건축 당시의 형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청주 근대교육의 산증인인 주성교육박물관은 2007년 문화재청이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1922년 영동 시대를 시작한 주성초등학교는 8번에 걸쳐 학교 이름이 바뀌었다. 학생 수가 많이 늘어나고 급변하는 사회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일제강점에 나라 잃은 섦움과 국민의 처지도 잦은 명칭 변경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명칭인 주성(舟城)은 해방 후 얻은 이름이다. 1948년 청주주성공립국민학교로 개명한 후 1949년 주성국민학교, 다시 1996년 주성초등학교로 변경하며 지금까지 주성이란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풍수지리상 행주형(行舟形)에서 기원 된 청주의 또 다른 이름인 주성을 학교 이름으로 사용한 것도 지역사적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1세기 역사를 품고 세월의 강을 건너오는 동안 학교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현대식 학교로 변모해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단아한 모습 그대로인 박물관 전시장에는 100년 전 학생들의 기록이 켜켜이 쌓여 있다. 마분지로 된 졸업 앨범에는 100년 전 학생들이 교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흰 모자를 쓰고 흰 런닝과 반바지 차림의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선생님의 구호에 맞춰 국민 체조가 한창이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산술, 초등국사, 천자문, 국어독본 등 대한제국 교과서와 점수가 기록된 학적부가 오랜 시간을 견디고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그렇게 127년 학교 역사가 사진과 지도, 학적부, 교과서, 수업증서 등 다양한 기록들로 가득 채워진 주성교육박물관은 이제 청주시민들에게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옛 모습에 추억도 더 명징하게 살아나는 걸까. 오랜 기억을 더듬듯 옛 친구를 찾는 근대교육을 받았던 졸업생들의 전화가 간간이 박물관을 깨운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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