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자
힘을 빼자
  • 강석범 청주 복대중학교 교감
  • 승인 2023.08.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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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복대중학교 교감
강석범 청주복대중학교 교감

야구선수 이대호는 현역 시절 큰 덩치에서 휘두르는 배트 스윙이 참 부드러웠다. 어쩜 저리 편하게 칠까?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 류현진 선수 또한 투구자세가 참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물 흐르듯 쉽다. 그렇다고 두 선수가 파워가 없느냐? 그건 아니다. 이대호야말로 부드러운 스윙에서 홈런을 펑펑 때려댔다. 류현진 역시 전성기 시절 정교함은 물론, 볼 빠르기도 어느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내가 한참 서예에 빠져 글씨 공부를 할 때가 있었다. 훌륭한 서예가들의 글씨 체본을 보고 혼자 아무리 열심히 힘들여 써보아도, 대가들의 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직접 글씨를 써 보이셨다. “잘 보셔~ 어깨, 손목에 힘을 준다고 힘 있는 글씨가 써지는 게 아니지~,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강, 약을 조절해야 비로소 글씨에 힘이 들어가는 거라네~” 선생님은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림 그리듯 시원스레 글씨를 써 내려가셨다.

나는 미술인이라 그림을 많이 그린다. 특히 드로잉을 즐겨한다. 그런데 연필 선을 강하게 표현하고 싶다고 손에 힘을 잔뜩 주진 않는다. 쓱싹쓱싹 그려 나가다 순간의 힘을 이용해 강한 필선을 표현한다. 그래야 강, 약의 조화로움이 표현된다.

몸에 힘을 뺀다는 건 약함이 아니다. 최고의 한 방을 먹여야 할 `강함'을 위해서는 힘을 빼고 부드럽게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쉬울 거 같지만 절대 쉽지 않다. 뭐든 잘하려 하면 당연히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게 스포츠건 예술 활동이건 아니면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큰 흐름을 볼 줄 알면, 단정히 힘을 빼고 뭐든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육체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너무 세게 몰아가면 금방 지치고 고장이 난다.

지난주 일이다. 피아노 전공을 하는 아들이 좋은 선생님께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마침 공개된 장소이기도 했고, 유명인 앞에서 뭔가 보여주려니 시작 전부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건반 위 손가락 속도는 마치 기관차가 질주하듯 맹렬하다. 멀찍이서 보아도 손가락이 마치 뻣뻣한 피노키오 손가락처럼 보인다. 목에서부터 허리, 엉덩이로 내려오는 자세는 초긴장으로 깁스를 한듯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연주곡을 마친 녀석도 도무지 뭐가 뭔지 정신을 못 차리는 눈치다. 아들의 연주를 촬영한 나도 긴장해서 어깨가 이미 천근만근!

연주 내내 악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선생님이 무대 위로 올라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얻는다. “음…, 한 가지만 얘기할게요~. 아주 쉬운 건데 또 어려운 과제이기도 합니다. 몸에 힘을 빼야 해요. 멋진 소리 강한 소리를 내기 위해선…, 그래야 합니다. 또 하나, 파워 있는 연주를 위해 처음부터 건반을 세게 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중에 진짜 강해야 할 부분에서, 더 이상 강한 소리가 나올 수 없지요. 강약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해요. 진정 아름다운 강함은 힘을 빼야 나옵니다.”

연주실을 나온 아들 녀석은 혼이 빠진 듯 멍하다. 이제야 몸에서 힘이 쫙~ 빠졌다. 호호. 지금 연주하면 제대로 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몸도 한결 여유롭다. 힘이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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