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의 꿈
사막여우의 꿈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3.08.1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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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온 천지가 사막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끝없는 모래언덕이 펼쳐져 있다. 모래 위의 물결 모양만이 바람이 지나갔음을 알려준다. 풀도 나무도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이 삭막하여 숨이 막힌다. 데일 것만 같은 태양을 피해 굴을 파고 들어간다. 그 안에 갇혀 있으니 예민해져 소리에 귀를 바짝 세우고 있다.

사막에 폭풍이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그 뒤에 들려오는 소식들이 흉흉하다. 곳곳에서 미친 늑대들이 출몰하여 엄한 이들을 물어뜯는다고 한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긴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아무나 공격한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원한이 없는 관계라 하더라도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두르고 있다. 평화롭던 거리가 공포로 떨고 있다.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 거리도 한산하기만 하다.

오늘도 악마의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 가슴을 쓸어내렸던 순간들이 채 진정이 되지 않았건만 또 들린다.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는 미친 늑대들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여 나는 자꾸만 굴속으로 숨는다. 혹시나 사막에서 달려드는 늑대를 만나면 도망가는 게 최선이다. 거기를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이빨을 드러낸 뒤에는 누구든 물어서 상처를 내야만 광란을 멈추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외로운 외톨이들이다. 외로움은 열등감과 함께 영혼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운 것만큼 건강에도 해롭다고 한다. 그들은 친구가 없고 가족도 소홀하여 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없다. 홀로 보내는 긴 시간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어느 순간 폭력성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남들은 다 잘살고 있는데 자신만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자신의 처지를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려 불만과 증오를 키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피해의식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 살해사건의 거리 악마를 두고 외로움을 넘어선 폐색감이라 정의했다. 사방이 꽉 막혀있어 답답한 상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력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나는 이제 안된다는 막다른 생각이 사회에 충격을 주는 범죄를 일으킨다. 우리의 외톨이들의 외로움을 방관한다면 폐색감으로 변이되어 더 커다란 공포가 될 것이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삭막했던가. 왜 이토록 극으로 치닫는지 안타깝다. 모두가 부모인 우리 탓이다. 그렇게 키운 죄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제대로 반듯하게 가꾸었다면, 그 안에서 사랑을 넉넉히 주었다면 저렇게 악마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것을 고쳐주고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가르쳐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다.

마더 테레사는 외로움이란 가장 끔찍한 가난이라고 말했다. 거리의 악마가 되기 전에 그늘에 갇힌 그들을 밖으로 유혹해야 한다. 물질문명과 무한경쟁에 잊힌 인간의 도리와 인성을 되살리는 일을 서둘러야 할 때다. 남들만 행복한 게 아니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을 품게 해야 한다. 그러면 외로움이 고독으로 승화하는 신비로운 순간을 알게 되리라. 혼자 있는 고통이 혼자 있는 즐거움으로의 우화(羽化)를 경험하게 될 테니까.

숨이 턱 막히는 날씨에 예고 없는 여우비가 쏟아진다. 가뭄에 말라버린 강바닥 같은 외톨이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비가 그치면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꿈을 꾼다. 이제 나도 굴속에서 나와 고운 무지개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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