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평행선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3.08.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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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어릴 때의 기억들이다.

길게 뻗어나간 신작로를 걸으며 일정한 크기의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았었다.

평행을 달리고 있는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오고는 했다. 그러나 끝 어디쯤에선가 하나의 점으로 만날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신비로 다가왔던 그 길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는 지금이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갔다. 이제는 그런 길을 걸어다닐 기회가 줄어들었다.

가끔은 회상에 젖어 찾아 나서지만 역시 교차점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야 만다.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숙제처럼 남겨질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편과의 거리는 언제나 평행선이었다.

남매를 낳아 기르고 출가를 시키면서까지 크고 작은 일에도 늘 그런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면 내가 먼저 선을 우회하도록 해야만 했다. 부드러운 인내가 필요했다. 손을 내미는 지혜마저 앞뒤가 뒤따라야 했으니 그만큼 남편은 상전에 가까웠다.

평행선에 변화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나밖에 모른다는 유행가의 일부 가사가 남편에게서 효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으니 오죽하겠는가.

가족 모두가 바라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을 뿐더러 걱정이 늘어 갔다.

솔직히 말해서 그 후로는 불가능하던 평행선의 간격이 조금씩 좁아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단지 그가 환자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함께 달려온 길 위에서 사이사이 일궈놓은 인생의 텃밭을 바라보는 기분은 부부가 아마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보이지 않게 간직해온 두 개의 선을 달음질 치듯 달려왔다. 뒤돌아볼수록 아득하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아우르며 살아갈지를 조용히 가늠한다. 특히 부부 사이에 놓인 선이 완만하게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 또 하루를 부딪쳐가며 모든 것들을 만지고 활용할 수 있어서 감사, 언제 어느 때에 이르러도 평화를 구하는 그런 자세로 살았으면 한다.

어느 날 초등학교 담벼락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뾰족한 말로 찌르지 말고 부드러운 말로 안아 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짧은 듯해도 간단한 내용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정서를 돕기 위한 현수막이었겠지만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두고 보태야 할 말로 각인되어왔다. 삶의 여정이 팽팽했던 가운데 혹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를 뾰족하게 찌를 때가 어찌 없었을까. 지난날 혈기 왕성할 때 남편과 주고받았던 상처들이 문득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다.

평생을 마주 보며 가는 평행의 길,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길, 그 길을 따라서 오늘도 꾸준히 걷고 있다. 하늘에서는 햇살이 환하게 쏟아져 내려와 마음을 가볍도록 해준다.

둘이서 쪽마루에 걸터앉아 낯설지 않은 평행선의 움직임을 바라보느라 바빠졌다. 그 속에서 온갖 희로애락이 되살아와서 춤을 주는 중이다. 그와 나, 여전히 소소한 사건들을 헤집으며 성냄과 웃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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