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향약 환난상휼의 전통으로 물난리 극복
서원향약 환난상휼의 전통으로 물난리 극복
  • 이행임 청주시 운천신봉동 통장협의회장
  • 승인 2023.08.10 16: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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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행임 청주시 운천신봉동 통장협의회장
이행임 청주시 운천신봉동 통장협의회장

 

율곡 이이 선생은 1571년 청주목사로 부임하면서 `서원향약'을 제정했다. 무엇보다도 각종 재난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는 `환난상휼'의 약속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16세기 `서원향약'의 정신은 미풍양속으로 전해져 21세기 청주시와 우리 시민들의 삶 속에도 녹아들어 있다.

2023년 7월 15일부터 이어진 장마가 우리나라 곳곳에 비 피해를 남겼고, 청주시에도 안타까운 피해들이 일어났다.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피해를 본 시민들의 사연은 어찌 그 당사자와 유족의 마음을 헤아릴까만 그 아픈 마음을 위로할 길이 마땅하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었다.

운천신봉동에도 비 피해가 이어졌다. 일심 아파트 및 그 일대 주택들은 우리 동에서 주민들의 거주지가 밀집된 지역으로 20명이 넘는 주민이 임시대피소(흥덕초등학교)로 잠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청주시 공무원들과 국군장병 및 여러 봉사단체에서 수해 피해 복구를 위해서 발 벗고 나서 주었다. 물에 빠져 쓸모없어져 버린 가전제품과 가구들, 넝마가 된 옷가지들은 여러 도움의 손길을 받아 정리되었다.

그러나 일심아파트 지하실이 문제였다. 엄연히 공동주택이지만 관리주체가 없는, 즉 관리사무실이 없는 현실 속에서 60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대다수인 일심아파트 주민들은 양수기를 이용해도 퍼지지 않는 지하실에 고인 물을 처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웃 주민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운천신봉동 통장협의회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25일 아침 9시에 일심아파트 주차장에 모여서 장화를 신고, 대야와 양동이, 밀대를 사열했다. 물 퍼내기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2m 남짓한 계단에 일렬로 서른댓명이 어깨가 닿을 정도로 이어 서서 낭창낭창한 지하실의 탁한 물들을 플라스틱 대야에 담아 전달했다. 밀대로 퍼담기 좋게 물을 모으는 사람, 모아진 물을 작은 대야로 큰 대야에 담는 사람, 모아진 물을 들어 올려 장사진의 끄트머리에 전달하는 사람, 대야를 옮기는 사람, 옮겨진 대야의 물을 하수구에 버리는 사람 모두 한 마음으로 이웃 주민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자작 자작하게 남은 물기마저도 모두 말려버리겠다는 의지로 현장의 모든 사람은 마른 수건으로 지하실 바닥을 훔쳤다. 물기를 제거한 지하실의 모습은 마치 미장을 갓 마치고 준공을 기다리는 새집 같았다.

예정보다 빠르게 끝난 봉사활동을 마치고 장비들을 정비하는데 어르신 한 분이 불쑥 손을 잡아 흔들며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손에는 고생 많았다는 말씀과 함께 5만원짜리 두 장을 함께 오늘 고생한 사람들에게 음료수라도 사 먹이라 하시는데, 고사하는 손을 뿌리치며 뒤돌아 가셨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와 나누어 먹은 이온음료 한 모금으로 전투 같았던 물 퍼내기의 수고로움은 한 번에 잊혔다. 재난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손쓸 수 없이 발생하는 재난 등에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있다면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작정이다. 운천신봉동, 청주시, 우리나라에 환난상휼의 아름다운 정신이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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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효 2023-08-10 20:32:49
운천신봉동 통장협의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