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약속
두 개의 약속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3.08.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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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어느 날 오진은 얄궂은 고민에 빠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두 개의 약속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발단은 약속 전날 늦은 밤 한동안 뜸했던 전화 한 통이 지인에게서 걸려왔다. 술 한 잔 걸친 야릇한 목소리였지만 그리 취한 듯한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오랜만이라는 말로 시작된 인사말은 그에 대한 반가움과 호감이 그의 목소리 곁으로 한발 다가서게 했다.

그는 곧바로 만나자며 다음날을 누구와도 약속하지 말고 비워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오진은 그의 적극성에 부응하듯 쾌히 약속하였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이야기가 없어 막연하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큰소리치는 강한 어조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 보니 무언가를 깜빡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또 하나의 약속이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 또한 정해져 있는 바는 아니지만 늘 묵시적으로 볼일이 있어 만나곤 하는 약속인데다 더구나 긴히 전할 물건이 있어 그와의 만남이 한층 더 다가왔다. 오진은 양다리를 걸친 것 같은 묘한 꼴이 되어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일단 부딪쳐보기로 하였다.

드디어 약속한 당일이 왔다. 예상했던 대로 오후 5시쯤 하나의 전화가 걸려왔다. 늘상 묵시적으로 만나는 지인이었다.

오진은 그 전화를 받고 잠시 우물쭈물 고민하다가 우선 걸려온 전화에 약속했다. 그런 반면 전날 걸려온 전화에서의 약속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약속에 대해 등을 돌리는 것이 석연치 않은 찜찜함이 자꾸만 켕기는 듯했다. 어쨌거나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림의 시간이 한참을 지나갔다. 기다림은 언제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때엔 아무리 긴 시간을 기다려도 설렘과 즐거울 때가 있는 반면 어느 때엔 짧은 시간임에도 지루하고 짜증이 섞일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럴 때인 것만 같았다. 한여름의 늦은 오후는 더위의 기세가 꺾이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짜증은 머리 위에서 갈증과 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갑자기 일이 생겨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왜 못 오느냐고 묻지 않았다. 오진은 한편으로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기왕에 이렇게 된 바에 전날 밤 걸려온 지인의 전화 한 통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어느덧 이미 시간은 밤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렇다고 오진은 그에게도 왜 전화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오진에게도 과오가 있을 법했기 때문일까 두 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사라졌다.

어찌 보면 오진에게 실망스럽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민했던 일들이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약속을 지키는 이도 없지만 지키지 못할 일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

욕심이란 존재는 그 유형도 다양하다.

그중에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다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럴 경우 모두를 잡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개 중 하나는 버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선택이 스스로에게 책임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론 약속을 지키지 못할 사람이 우유부단한 욕심으로 인해 무책임한 모순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이란 존재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가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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