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옷을 벗는 남자
매일 옷을 벗는 남자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8.0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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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매일 옷을 벗는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옷을 입고 있으면 사람의 높고 낮음이 다르게 보이지만, 옷을 벗으면 평등하다고.

그래서 옷을 벗은 사람이 자기는 좋다고 한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대한민국 끝자락 해남에서 태어났다. 집이 가난해 공부할 수 없어 무작정 서울로 와 열아홉에 옷을 벗기 시작해 삼십 년을 넘게 매일 옷을 벗는다고.

맨몸을 눕혀 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앞뒤로 때를 밀고 마사지를 하면 직업도 보이고 성격도 보인단다.

뭉친 곳을 풀어주면 “아이고 시원해”라는 이가 있고, “음” 표현하는 이가 있는 반면, 반응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다고. 힘으로 일하는 사람의 때는 굵고, 노동자의 때는 검고, 머리만 굴리는 자는 가늘다고 한다.

몸의 균형을 보면 운동을 하는 사람인지, 온종일 책상에 앉은 직업인지도. 그리고 몸을 섬세히 주무르면 근육이 뭉친 것인지 잘못된 종양이 자라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근육이 아니다 싶으면 병원을 권한다. 어김없이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몸이다. 이런 인연으로 고마워하는 이와 정을 나누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고 했다.

어느 날 초등학생 아들이 “아빠, 가정통신란에 아빠 직업을 무엇이라고 써요?” 때밀이라고 적으렴, 선뜻 대답할 용기가 없더란다.

아빠의 직업을 모를 리 없는데 막상 아빠의 직업을 때밀이라고 적기가 부끄러워 숨기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을 읽자, 있는 돈으로 족발집을 차렸다.

우리 아빠 사장님이야 떳떳하게 자랑할 기회를 주려고.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옷을 벗는다.

또다시 옷을 벗었다는 대목에서 내 뼈가 찌르르 운다. 철없는 자식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자신도 무지해서 택한 직업인지라 탈출하고 싶었던 생각이 마음에 독버섯같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옷을 벗으면 평등하다고, 자기는 옷 벗은 사람이 좋다고 했겠지. 더 설명하자면 남들처럼 좋은 옷 입고서 하는 직업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신도 야속하지. 좀 무게를 잡으면 어때서, 사랑하는 자식 앞에서만은 무게를 잡고 싶어 하는 아비의 자존심 좀 살려주지. 너무나 애석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직업에 높고 낮음은 있다. 땀 흘려 모은 돈을 다 탕진하고 다시 옷을 벗을 때의 고개 숙인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애잔하다.

개뿔도 없는 거지 같은 인생이라고 좌절하고 숨었더라면 오늘의 당당한 인생은 없었으리. 누구나 긴 인생을 살다 보면 업종을 바꾸어 쓴 고비를 겪는 이를 종종 본다. 다시 옷을 벗고는 자신에게 나는 몸을 조각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달래며 어르신은 부모님으로, 젊은이는 형제를 보듬는 심정으로 때를 밀고 마사지도 성심성의껏 하게 되더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직업을 잡지 못해 고민하는 젊은이여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연봉이 3000만원이 넘는 직장에서 웃으며 일할 수 있다고” 겸손한 이 세신사는 성공한 삶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자신의 재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상대방을 만족시켜 주는 것도 성공한 삶이고, 자신의 직업을 만족하며 사는 자도 성공한 삶이다. 행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문벌 높은 자만이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별만 같다면 앞서 소개한 몸을 조각하는 남자의 손에 몸을 맡겨보고 싶다.

나의 성격과 무슨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았는지도 어디가 부실한지도 일러주지 않겠나.

KBS 아침 마당 전국 이야기 대회에서 `몸을 조각하는 남자' 제목으로 우수상 받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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