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로 향하면서
수술실로 향하면서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3.08.02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네, 아주머니, 많이 미안해하셔야 합니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말을 던졌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옆 병실로 들어가는 순간, 그분의 아들이 화를 내며 “우리 엄마에게 욕하셨어요?”라는 말을 듣자 나의 몸에 있을 30조 개의 세포들이 일제히 뾰족한 못이 되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수술을 앞두고 열이 내리지 않았다. 이유를 찾기 위한 검사를 하고 한 달 후로 미뤄진 수술 날짜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잠시 후 코로나 양성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조금 더 조심하지 못한 자책으로 외출하지 않았다. 코로나는 완치되었으나 병원 사정으로 수술 날짜는 또다시 미뤄지고 결국 세 번 만에 입원했다.

남편과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중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 아드님이 왔다. 죄송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코로나에 걸렸었으니 조심해 달라는 말을 하며 병원에도 당부했다고 했다. 나는 완치 판정받고 입원했으니 나에게 이럴 것이 아니라 병원 측에 부탁해서 다른 병실로 옮겨 달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예의 바른 그의 말에 불쾌했지만 아픈 어머니를 둔 아들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어 알았노라 대답했다. 몇 분이 흐르고 잦은 기침을 하는 내게 옆 아주머니가 말했다. “간암에 걸렸는데 이번에 다시 신장암 수술했어요.”

암이 두 군데나 걸렸다는 말에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이어지는 단호한 어조가 몹시 불편했다.

“그러니 조심해 주세요. 마스크 절대 벗지 말아 주세요. 나는 약을 함부로 먹을 수 없어요.”

남편과 의논한 끝에 우리가 병실을 옮기기로 했다. 마침 빈 병실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냥 갔으면 좋았을 텐데, 또다시 곧추선 세포들과 이미 꼬여버린 나의 입에서 기어이 속엣말이 터지고 말았다.

“제가 왜 병실을 옮겨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다인실을 쓰시면서… 아무튼 저도 불편해 옮깁니다.”

그에 덧붙여 미안해하셔야 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던지고 나왔다.

새 병실에 들자 곧 문이 벌컥 열리며 자신의 엄마에게 욕을 했다면서 아들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벌렁거리던 가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또 널뛰기 시작했다. 수술 날짜가 미뤄지면서 나도 예민한 상태였다. 흥분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설명했으나 그 아들은 연신 억울한 말과 표정이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술해야 하니 진정하라는 남편의 걱정스러운 말에 누워서 복식호흡을 반복했다.

입원 첫날의 밤은 고무줄처럼 늘어졌다. 하나의 암도 버거운데 두 개의 암을 지니고 있을 그분의 속내도 점차 이해되었다. 놀란 마음에 옆 환자가 코로나에 걸렸었다니 얼마나 무섭고 걱정되었을까. 병을 고치러 와서 순간을 참지 못하고 버럭질을 하고 싸움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다음 날 아침, 수술실로 향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분도 그 아들도 그리고 나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분도 나도 너무나도 엄청난 상대와 싸워 이겨내야 하는 암 환자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 앞에서 예민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하여 그깟 버려질 암세포보다 무수히 많을 건강 세포를 보지 못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떨리는 남편의 손을 뒤로한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자고 나면 암세포와 함께 날카롭게 세웠던 모든 가시가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