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세 알
복숭아 세 알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3.07.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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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연일 비가 내려 몸도 마음도 눅눅하다. 7월은 마른날이 드물었다. 징글징글하게 비가 내린다. 아랫집 형님이 이 빗속에서도 복숭아가 잘 익었다며 한바구니 가지고 오셨다. 그중 제일 잘 생긴 놈으로 골라 한입 베어 물었다. 입안에 향이 가득하고 단물이 뚝뚝 떨어진다. 온몸이 복숭아 향으로 물들었다. 나는 복숭아를 먹을 때면 오래전 그 복숭아 맛이 살아난다.

결혼 10여 년이 지나 시부모님과 합가를 했다. 그동안 아이들만 키우며 작은 살림만 하다가 큰살림을 하려니 몸은 약하고 힘에 부쳤는지 자주 몸살을 앓았다. 밥도 못 먹고 몸은 말라가고 많이 힘들었다. 시어른들 삼시세끼 차리는 일도 마음이 켰다. 그날도 몸살로 앓아누워 있었다. 남편은 퇴근길에 평소 내가 좋아는 복숭아를 길거리 리어카에서 3개를 사가지고 왔다. 복숭아를 내밀면서 방에서 혼자 먹으라는 것이었다. 마누라는 뭘 좀 먹여야겠고 주머니에 있는 돈이 그것밖에 없었단다. 남편마음을 헤아릴 새도 없이 철없던 나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안 드리고 당연하게 혼자서 몰래 먹었다. 우리 시부모님이 아셨다면 아들 키워놔야 아무 소용없다고 하시며 서운해 하셨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찌 달달하고 향기로운 날만 있으랴. 힘들고 허전할 때 그래도 가끔은 내 기억 속 좋았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 세상을 디디고 살아가는 힘이 된다. 퇴근길에 붕어빵 몇 개 품속에 품고 들어오는 가장의 마음,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마중 나오는 아내의 마음 이런 것들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작고 사소한 행동 따스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살게 하는 또 다른 에너지다. 서로에게 감동을 받아 본 게 언제였는지 요즈음은 각자 도생하는 거란다. 너무나 삭막하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감동을 주면서 삭막하지만 어느 한 부분은 따스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요즈음은 먹을 것은 넘쳐 나는 세상이다. 먹는 방송, 음식여행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는가. 왜 이렇게 먹방에 관심이 많은가 젊은이들에게 물어봤다. 부모 도움 없이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좋은 집이나 부자 되기는 어렵고 할 수 있는 것은 맛있는 것은 먹어 볼 수 있으니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단다. 그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 월급 타서 몇 년 동안 적금 넣어 모아놓으면 집값은 그 이상으로 올라 있으니 내 집 마련의 희망은 사라지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즐기면서 살아간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몰래 먹었던 봉숭아 맛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것은 은밀했던, 떨렸던, 불안했지만 나 혼자만 누렸던 특별한 기억때문이지 싶다.

누구나 이런 기억쯤은 다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옆집 오빠를 남몰래 마음에 담았던 때를, 고등학교 때 수학 과목은 싫어하면서도 선생님이 좋아서 몰래 훔쳐보았던 짜릿했던 기억, 지금은 복숭아 3개가 아닌 상자로 사다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먹었던 복숭아 맛을 잇지 못하는 것은 그 결핍의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랫집 형님 덕분에 이 뜨겁고 눅눅하고 습한 여름날 한때를 달콤한 복숭아를 먹으며 더위도 습기의 횡포도 이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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