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天職)이 아니었다
천직(天職)이 아니었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3.07.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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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참담하다.

교직이 생명을 위협하는 직업으로 전락한 요즘. 한때 선망의 직업이었고 여전히 청소년들에겐 희망직업 1위로 꼽히는 교사가 이젠 기피 직업 1순위가 됐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 교사 경력 2년차인 서울 서이초 교사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 2주 전인 지난 3일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놓은 글귀다.

“잠깐만요. 우리 딸도 몇 개월 전에… 우리 딸도… 똑같이 죽었습니다. 사건이 이대로 지나가면 묻히고 우리 딸은 억울하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4일 서울 교원단체총연합회, 서울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등 3개 교직단체와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긴급 공동 기자회견 도중 중년의 한 남성이 회견장에서 울부짖으며 던진 말이다. 이 남성은 자신의 딸이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였지만 교권 침해 문제를 겪고 6개월 전 사망했다고 호소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교권 강화를 위한 교육부 고시 제정과 자치조례 개정 추진을 지시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정부에서 교권 강화를 위해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일선 현장의 구체적 기준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고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비오는 주말 청주상당공원을 찾았다. 충북교사노조가 사망한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분향소엔 교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분향소를 찾은 한 교사는 방명록에 `이런 현실 속에 하루하루 버티기만 해와서 미안합니다.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더 나은 교실 만들게요'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바른 방향으로 학생을 지도하고 싶어도 학부모들이 민원을 넣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한다”며 “갑질 학부모를 만나지 않은 게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자기 검열을 잘해서 살아남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초등교사가 애들 사진을 안 찍어주는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글쓴이는 지난해 반 학생들의 견학 활동 사진 30장 정도를 학급 메신저에 올렸지만 어떤 엄마가 사진을 세어보니 누구는 7번 나왔는데 자신의 아이는 4번 나왔다며 따지는 연락을 받은 이후로는 사진을 아예 찍지않는다고 밝혔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지난 21일부터 전국 초등교사 23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권침해 실태 조사 결과 99.2%가 교권침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권침해 유형으로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49%)이 가장 많았고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학생의 불응·무시·반항이 44.3%로 뒤를 이었다.

외국이라고 교권 침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안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교육정책네트워크가 공개한 외국의 교권보호제도 및 정책을 보면 영국의 교육부는 교권침해가 심각한 사안에 대해 정학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했다. 교직원은 학생의 그릇된 행동을 인식한 경우 학교의 행동 교칙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데 학부모의 동의 없이 법적으로 구금(쉬는 시간, 점심시간 또는 방과 후에 남기기)을 내릴 권한을 갖는다. 독일은 교권보호를 위해 학교법에 교사가 교육적 조치와 규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사안에 따라 중도의 수업방해와 폭행 등은 출석정지 조치 및 경찰 신고 등으로, 학부모 대응은 매뉴얼 작성과 경찰 신고, 스쿨 로이어, 스쿨 폴리스 등의 활용 등으로 대응한다.

스승의 은혜가 사라진 교실. 터질게 터졌다는 교육계 반응과 달리 정치권에선 교권보호와 관련된 각종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잠자고 있던 계류 법안까지 들먹이며 호들갑을 떤다. 소나기만 피할 요량처럼. 교사들의 한숨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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