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부대
유모차 부대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3.07.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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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큰길가에서 한 무리의 유모차와 마주쳤다.

엇비슷한 나이의 젊은 엄마 대여섯이 고만고만한 유모차를 앞세워 걸어오고 있다. 근처에서 무슨 육아 강좌라도 있었는지 서로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아침에 본 기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괜히 기특한 마음이 들어 재빨리 길을 비켜주었다. 인도를 점령하고 지나가는 유모차 부대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처럼 보무(步武)도 당당하다.

기사에선 2022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했다. 여성 한 사람이 가임 기간에 출산하는 아이의 총합이 한 명도 안 된다는 얘기다. 요즘 청년들을 N포 세대라고 부른다는데, 그 포기하는 여러 가지 목록 상단에 결혼과 출산이 있는 것이다. 출산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만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 하나 살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가정과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일은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인구학자가 `인구 소멸 국가 1호'로 한국을 지목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가다가는 그 예언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내 생각에는 많은 청년이 비혼을 택하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식에게 밝은 미래를 물려줄 수 없으리라는 암담한 현실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자유롭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라면 굳이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 사태를 이렇게 만든 건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결자해지, 이제 청년들에게 다시 희망을 찾아줘야 할 때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숭고하고 보람된 일인지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미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실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정책과 제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걸 보면 제도가 있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 듯하다. 얼마 전 TV에서,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더니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지역으로 발령이 나 있더라는 젊은 아빠의 사연을 봤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할 수도 없고, 서울로 이사할 형편도 아니어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직장을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불이익을 감당하면서까지 육아휴직을 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했었다.

독일에서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엄마든 아빠든 육아휴직이 보편화 돼 있어 우리나라처럼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으며, 2024년부터는 모든 유치원과 학교가 전일제로 바뀔 예정이란다. 국가와 기업과 학교가 한마음으로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르도록 돕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일시적인 기대효과 말고 사회 전체가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거시적인 안목에서의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사실 우리 딸들도 아직 아이가 없다. 혹시 내가 손주를 안 봐주겠다고 해서 못 낳고 있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 중이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삼 남매의 손주들을 다 봐 주다 보면 내 노년의 황금기는 놓쳐버릴 것 같아 망설이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묘수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나도 빨리 우리 딸들의 당당한 유모차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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