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진 나의 마음
시간이 멈춰진 나의 마음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3.07.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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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집들이에 초대를 받았다. 새집으로 이사한 지인이 차 한 잔 마시자며 초대한 것이다. 요즘도 집들이하나? 내심 집들이라는 말이 생경스럽다. 1인가구가 늘고 외식위주로 생활하는 요즘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초대에 응하면서 나의 머릿속은 온통 소환된 신혼 시절 어설픈 집들이 추억으로 가득했다.

그때는 아파트도 흔치 않았을 뿐더러 주택구입은 꿈같은 생활이었다. 다세대주택이나 빌라 혹은 남의 집의 셋방살이에서 신접살림을 대부분 시작했다. 그나마 부모님 도움으로 자가를 구입한 동무들은 몇 되지 않았기에 임대주택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렇게 모두가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관계로 집들이 날이면 한집에 모여 잔칫날이었다.

불현듯 그립다. 소나무 숲에서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청주 봉명동의 다세대주택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곳에서 집들이는 물론 백일, 돌잔치까지 집에서 치렀다. 비좁은 주방과 방 두 칸, 교자상을 펼쳐놓으면 서로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좁은 방이었지만 잔칫날이면 만남 자체가 행복이기에 모두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찾았다.

살림에 서툰 새색시 시절, 친정어머니께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고 당연하다는 듯 친정어머니는 바리바리 식재료를 싸 가지고 오셔서 만만의 준비를 해 주셨다. 그때는 왜 그리 신부에게 짓궂게도 노래를 시켰는지 지금은 노래방이 활성화되어 전 국민이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고 있지만, 새색시였던 난 부끄러움에 홍조가 되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노래를 불렀었다. 그렇게 흥에 취해 고스톱도 치고 무용담도 늘어놓다 보면 한밤중이 되어서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세월 따라 많이도 변했다. 무엇이든 대형화 추세로 변모하는 요즘, 주택도 점점 평수가 넓어지지만 백일, 돌잔치는 대행 업소에서 화려하고 럭셔리하게 치르는 당연한 요즘과는 달리 대조적인 신혼시절이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IT 디지털시대에 집들이도 변모했다.`랜선 집들이'라고 한다. 예쁘게 꾸민 집을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놓고 자랑하듯 소개하는 것이 랜선 집들이다. 인테리어 감각을 서로 공유하고 실용적이고 아름답고 럭셔리한 주거공간을 꾸미기 위해 랜선 집들이가 유행이다.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 줄게'라고 약속했던 남편들, 약속을 지키려는 듯 모든 집안잔치는 출장뷔페를 이용하고 있다. 그 예전 세대는 좁은 집에서 어떻게 그리 많은 손님을 접대했는지 기억만으로도 대견스럽다.

주택이 언제부터인가 대형 중형 소형으로 구분하면서 부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서울 강남권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란다. 그에 따라 자동차도 자연스레 그림자처럼 부의 상징으로 따라붙는다. 주택시장에는 상품성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가 탄생했고 어느 시점부터 아파트는 중산층 거주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온 가족이 올망졸망 단칸방에서 살던 시절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도심 곳곳은 대형아파트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편의성까지 더한 아파트는 선호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자연스레 아파트는 부의 상징으로 진화되었다. 그럼에도 길게 늘어진 고층아파트의 그림자에 가려진 골목길에 다다르자 찌르는 듯 아리고 가슴이 턱 막힌 듯 먹먹하다. 자분자분 계단을 올라 집들이 초대한 아파트 승강기 앞에 섰다. 입주가 한창이다. `직장생활로 밤늦은 시간까지 정리합니다. 시끄러워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쓴 글이 승강기 안팎에 붙어 있는 손 글씨 협조문, 왠지 모를 편안한 것이 그래도 이곳은 정이 오가는 살만한 세상이지 싶어 따스해진다.

집들이는 한창이었다. 찻잔을 들고 온 지인의 손끝에 머문 시선이 곱다. 찰나 찻잔 속에 봉명동 신접살림 집에서 시간이 멈춰진 나의 마음,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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