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
종착역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7.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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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요즘은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생의 종착역 같은 노인 병원 또는 요양원에서 생활한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씩 생신을 맞이한 어르신들을 위한 위문 공연 날이다. 몸은 비록 휠체어에 앉았지만 노래도 따라 부르고 손까지 흔들며 즐거워한다. 이렇게 즐거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오늘 같은 날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 분도 있다. 휠체어를 밀고가 홀로 있는 그녀에게 모시러 왔노라 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나는 첫날부터 창문만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자주 토하는 편마비 환자에게 꽂혔다. 이 여인은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늘 겉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잊었는지, 반항하는 것인지, 현재의 삶이 무의미해서인지 스스로 하지 않아 매일 식사하세요. 양치하세요. 약 먹을 시간 있었어요. 운동하세요. 목욕하세요. 로봇처럼 요양사가 시켜야 한다.

나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혼자 말처럼 “아드님이 보고 싶으신가? 따님이 오늘은 오려나?” 읊조렸다. 그녀 역시 미동도 없이 “바빠서 못 와” 툭 뱉는다. 며칠을 두고 다독인 반응이다. 그리곤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길게 쉬고는 말문을 연다.

여기 오기 전 시골서 농사일로 오 남매 키워 일가를 일궈 나갔고 둘이 살다 남편이 편마비로 자리에 누웠고 급기야 본인도 이렇게 되었단다. 청주 사는 아들이 우리 집으로 가자, 하여 따라와 며칠을 지내보니 내 집만 못해 옛집으로 가겠다 졸랐더니 이곳으로 데려다 놓더란다. 남편도 이 층에 있다는 말에는 목멘 소리가 바르르 떨린다. 하루에 한 번은 가 보시느냐 물었다.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애잔해 내 가슴이 답답해 온다. 아들이 올 적마다 내 집으로 데려다 달라 졸랐더니 요즘은 발길이 뜸하단다. 이 몸으로 생활하실 수 있겠냐 물으니 전기밥솥,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여태껏 잘해 먹고 살았다며 큰소리로 화를 버럭 낸다.

`80세의 벽' 책에는 80세가 되면 병원보다는 머물고 싶은 곳에서 사랑하는 이와 좋아하는 일 하며 사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아 병이 악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분의 자식은 효자인가 불효자인가. 내 의견을 말하라면 원하는 집으로 모셔다가 놓고 가정요양사가 보살피면 좋지 않겠는가 싶다. 하여 그녀에게 조용조용 “그토록 옛집이 그리우면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재활 운동을 해 마비된 팔과 다리에 근육을 단련해야죠. 평생을 흙과 사셨으니 가꾸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라 꽃피우고 씨 맺어 종을 번식시키는 강인한 들풀처럼.” 눈물이 두 뺨에 주르르 흐른다. 다시 말을 이어 다독이기를 “아드님이 오면 웃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면 밥은 이렇게 짓고 빨래와 청소는 이렇게 해 왔다고 설득해 보세요.” 대답 대신 또 긴 한숨을 내쉰다. 웬 수인 남편도 하루에 한 번은 찾아가 다독여 주어야지. 아이가 엄마에게 무엇을 달라 요구할 때의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수줍어 피식 웃는다. 한편 고향 집이 얼마나 그리우면, 얼마나 남편이 측은하면 아래위에 있으면서 오고 가지 않겠나.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그녀의 형편이 우리 부부의 청사진을 보는 것 같아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이 무겁다. 우리 형편도 내가 건강을 잃으면 저들 부부와 다를 바 없다. 현재 남편은 도움이 없으면 한 끼의 식사도, 문밖출입도 할 수 없는 시각, 청각 장애인이 된 지 십여 년이 넘었다.

예로부터 모든 생물은 날 때부터 죽음을 안고 태어난다. 그럼에도 이 땅의 삶이 전부 인양 아등바등 살아간다. 만물을 지배하는 영장인 인간도 예외는 없다. 태어나 한판 사는 동안 각색 질병이 하나씩 둘씩 찾아오는 것이 종착역으로 가는 전주곡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요양원에서 열흘간 실습하는 동안 보고 느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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