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대감의 눈물
조 대감의 눈물
  • 박일선 동화작가
  • 승인 2023.07.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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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일선 동화작가
박일선 동화작가

 

탐라(耽羅)의 원형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어 몇 년 동안 제주를 두루 밟다가 `홍랑(洪娘)'을 만났다. 그녀는 정조 시해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된 `조정철'이 제주로 유배를 왔을 때 그 처소를 드나들며 잔일을 도와주다가 사랑에 빠진 홍윤애다.

그 사랑의 대가는 정철에게 누명을 씌우고자 하는 제주목사 김시구에 의한 투옥과 고문, 압박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29년 유배를 마친 정철은 `제주목사 겸 전라도방어사' 가 돼 31년 만에 섬을 다시 찾아 그녀에게 시를 바친다.

옥 묻고 향 묻힌지 얼마나 오래던가(玉埋香奄幾年예옥매향엄기년)/ 누가 장차 꽃 같은 님의 한을 창공에 하소연할지(誰將爾怨訴蒼旻수장이원소창민)/ 저승길 먼데 뭘 믿고 가셨나(黃泉路邃歸何賴(황천로수귀하뢰)/순결한 맘 깊이 품어 죽음을 맞았구나(碧血藏深死亦緣벽혈장심사역연)/ 어여쁜 이름 영원히 향풀로 피어나니(千古芳名杜烈천고방명형두열)/ 한 집안 한 쌍의 절개 어진 자매라(一門雙節弟兄賢일문쌍절제형현)/ 쌍 오두문 지금 짓기 힘드니(烏頭雙闕今難作오두쌍궐금난작)/푸른 풀만 무덤에 무성히 돋았구나(千古芳名 杜烈천고방명형두열). 56자로 30년 이별의 아픔을 절절히 노래했다.

여기서 옥은 홍랑이요 향은 그 언니를 이른다. 그녀도 남편이 죽자 뒤따랐으니 이를 `一門雙節(일문쌍절)'이라며 높이 추모한다. 정철보다 신분이 낮았던 그녀들을 위해 당송시대 유행한 관리집 대문인 `烏頭門(오두문)'같은 열녀문을 세워 줄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 홍랑은 `내가 오직 죽어야만 공이 산다(公之生在我一死공지생재아일사)'며 모진 고문 속에서 허위자백을 강요당하다가 순절(殉節)한다. 신분사회에서 유배지의 짧은 사랑을 잊지 않고 고관대작이 돼 험지까지 찾아와 술잔을 붙고 피붙이를 거둔 정철. 즉흥적이고 이해적 사랑이 판치는 지금에 이런 단심(丹心)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영원히 빛날 것이다. 바로 그 조정철이 묻힌 수안보의 조산(趙山) 묘비에 `의녀(義女) 홍랑'도 함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배산임수 명당에 목가적 분위기가 짙게 스며 정철과 홍랑이 금방이라도 손잡고 뛰어나올 것만 같은 한적한 숲이었다. 애월에 잠든 홍랑은 바다 건너 낭군님을 바라보고 조산의 조대감은 백두대간 너머 낭자를 바라보며 못다한 정을 나누듯 앉아 계셨다.

그런데 최근 충주시는 조산을 성역화한다며 그 묘지 위에 화장실과 주차장, 유희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두 분의 어여쁜 사랑과 처절한 역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닌가? 조대감도 조산도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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