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도 수정이 될 수 있을까?
통닭도 수정이 될 수 있을까?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7.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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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순하디 순한 사람이었다. 벌레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 같았다. 40년 전에는 분명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생닭 한 마리쯤 토막을 내는 데는 아주 짧은 시간이면 족하다.

남편이 사람 허리쯤 오는 단단한 통나무를 어디서 구해 왔는지 도마로 만들어 주었다. 크고 묵직한 칼이 통나무 도마 위에서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춘다.

“탁탁탁, 탁탁, 탁탁탁탁”

닭 한 마리가 일순간에 동강이 나 플라스틱 대접에 들어앉았다. 양념을 버무릴 큰 바가지에 방금 전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 동강 난 닭을 쏟아 붓더니 몇 십 년의 익숙한 손놀림으로 양념이 배합된 바가지를 위아래로 까부른다.

어느새 골고루 양념이 배어들었는지 자르르 윤기다 돈다. 그렇게 양념이 된 닭은 냉장고 속에서 숙성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집 냉장고보다 두 세배는 됨직한 커다란 냉장고 문을 닫은 다음에야 그 여린 친구는 의자를 가지고 와 앉았다.

중학교 때 부터 둘도 없던 내 단짝 친구는 통닭집 주인이 되었다. 말수도 적고 수줍음도 많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통닭집을 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더니 친구를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친구도 나도 지나온 세월이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열심히 잘 버티며 살았다.

훈장이라고 해야 할까. 서 있는 시간이 많은 친구는 하지정맥으로 다리가 불편하고, 수업이 많은 나는 왼쪽 어깨와 족저 근막염으로 고통이다.

이만큼의 세월을 부려 먹었으니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는 당연하다. 어디 세월의 흔적이 어깨와 다리뿐이던가. 눈은 침침하고 얼굴에는 주름이, 머리는 흰 눈이 내려 앉아 염색으로 감추기 급급하다.

친구를 보고 있자니 우리의 젊은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우리의 청춘은 그래도 꽤나 즐겁고 근사했다,

요즘 말로 `남자 사람 친구' 녀석들과 젊은이들의 요새였던 `비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야채시장 골목 중간 지하에 있던 `비원'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40년 전만해도 음성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음성 젊은이들의 만남의 공간이 다방에서 레스토랑으로 옮기게 되는 역할을 했던 곳이 `비원'이었다.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던 내 친구는 사실 내 꼬드김에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각자 직장에서 일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그곳에서 고달프고 힘든 하루를 위로받곤 했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삶에 대한 고충과 앞날에 대한 회의를 쏟아내고 나면 또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때 그렇게 청춘을 함께 했던 `남자 사람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가끔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나누고 있는데, 그때마다 최고의 안주는 추억이 되곤 한다.

뜨거운 커피를 반쯤 마셨을 쯤 튀김 통탉 주문을 하는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서자 어느 결에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던 친구 남편이 주문이 들어 왔음을 어찌 알고 냉큼 문을 열고 들어 왔다. 부부가 나란히 서서 닭을 튀기기 시작한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뒷모습조차 참 많이 닮았다. 친구의 남편은 여태 우리와 말을 섞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부러 말을 시키면 멋쩍은 표정으로 짧은 대답을 하고는 사라지곤 했다. 그러니 친구가 생각나 들르면 편하지가 않아 금세 일어나게 된다.

양념이 잘 스며들어서일까. 아니면 친구의 정성이 깃들어서일까. 기름을 쏙 뺀 닭고기에 양념으로 덧입히니 발그스레한 빛이 난다. 그 위에 깨까지 솔솔, 화룡정점이다. 맛깔스러운 통닭 보석이라 해도 되겠다. 그래서 `수정통닭'이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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