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날의 수채화
저문 날의 수채화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3.07.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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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동네어귀 길모퉁이 접어들면 거기에 떡볶이와 어묵 행상을 하는 할멈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그곳을 할멈카페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초여름이 길게 늘어져 가는 저무는 오후 박노인의 눈가에 글썽글썽 이슬이 맺혔다. 박노인이 카페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 멍하니 보내고 있을 무렵 할멈이 박노인에게 트럭을 팔아서 서운하시냐고 물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트럭을 몰고 장사를 하러 이 곳 저곳을 누비며 다녔다. 그렇게 돈도 벌어가면서 세상을 유람하듯 하루의 나날을 즐거움으로 보냈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그에게 평생을 허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에게 병이 찾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트럭을 몰고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우울했다. 아닌게 아니라 트럭은 그에게 그 누구보다 커다란 재산이라면 재산이었다. 박노인에겐 자식도 없고 아내마저 그 언젠가 떠나가 버렸다.

그런 그에게 트럭은 반려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시간의 강이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에게도 한때는 젊고 푸른 시절이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았다.

트럭 한 대에 젊음을 싣고 희망을 싣고 작은 행복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갔다.

어느 날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저녁 그녀가 행상을 막 접으려고 할 때 그가 불쑥 들어왔다. 그때 그들은 할멈과 노인이 아닌 젊은이였다.

그는 그녀에게 떡볶이와 어묵을 달라며 뱃속에 시장기를 호소하였다. 그런데 그 때 마무리를 하는 바람에 떡볶이와 어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마치 누구라도 되는 양 어린아이 보채듯 막무가내로 재촉을 하였다.

그녀는 그의 허기진 모습이 안쓰러워 접으려던 좌판을 다시 펴고 떡볶이와 어묵을 만들었다.

어묵이 대충 뜨거운 물에 데워지자 제대로 익지도 않은 어묵을 마구 집어 먹다가 입천장을 데기까지 했다. 그녀가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그런데도 떡볶이와 어묵국물을 정신없이 오가며 그렇게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나자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전대를 풀어 그녀 앞에서 자랑이라도 하는 양 신나게 돈을 세며 싱글벙글 흐뭇해하는 그 시절에 그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배려해준 고마움에 돈을 넉넉히 내놓으며 인사를 하고는 카페를 떠났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인데도 그들에겐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가로등에 비친 빗방울이 다시 빛이 되어 내리고 트럭은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달려갔다. 잠시 두 사람은 회상에 젖은 듯 말없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옛날의 그 모습은 어디가고 할멈과 노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씁쓸하게 웃었다. 비가 그날처럼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와 함께 나란히 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반려자 말고도 친구 등등 여러 사람이 있겠지만 실상 그런 사람을 찾기란 쉬운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멀지도 않은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너무 가볍게 지나쳐 버리는 경우를 보곤 한다.

그 까닭은 그러한 사람을 찾는다면 늘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이 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늘 마주치며 동고동락하는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누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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