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넋두리
풍경 넋두리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3.07.0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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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휴일이다. 오늘은 어떠한 일도 하지도 벌이지도 않고 온종일 한가로이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늘 분주하게 살아왔던 생활이 몸에 배어 버렸는지 소파에서 뒹굴 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싫증이 나고 책을 읽는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퇴고하려 해도 그마저도 집중되지 않는다. 이런 날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 나에 대한 예의일터 노트북을 닫고 일어섰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차를 마시며 베란다 정원 탁자에 앉아 바깥풍경 감상이나 해볼 요량이다.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이며 커피와 꽃차를 두고 잠시 갈등을 한다. 꽃차를 배우게 되면서 생겨버린 행동이다. 아무래도 커피의 향과 맛도 몸에 배어버린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난 후 남편과 마시는 달달한 인스턴트커피 한잔은 찰나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듯 즐겁고 가끔 원두 내릴 때 거실에 퍼지는 은은한 커피 향은 매혹적이며 감미롭다. 무더운 날 얼음 가득 품은 아메리카노 한잔은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커피의 유혹은 매번 강력하게 날 끌어당기지만 오늘의 선택은 꽃차다. 그동안 덖어놓은 꽃차 중에 도라지꽃을 유리 다관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차를 우릴 때마다 맑은 물에 서서히 수줍은 듯 번져가는 차의 빛깔을 바라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진다.

파란바다 빛으로 다관을 물들인 차를 미리 얼음을 담아 놓은 컵에 가득 붓고 더불어 고요해진 마음도 듬뿍 담아 베란다 정원으로 나갔다. 몸을 살짝 틀어 우암산이 보이는 왼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14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밖의 풍경은 늘 변함없는 것 같지만 새롭고 흥미롭다. 발을 땅에 디디고 바라보는 세상과는 느낌도 사뭇 다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면으로 보이는 시내 풍경은 정겹고 편안했다. 그 정겨움과 편안함을 깨트린 건 시멘트기둥 두 개를 하늘 높이 우뚝 세워 놓은 듯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부터였다. 멀리 바랄 볼 수 있는 시야가 중간에 툭 끊어지며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고만고만한 건물들 사이에 주변과 조화를 외면하는 듯 아파트건물은 주변 어떠한 건물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생뚱맞다. 마치 다른 사람들과의 상생도 거부하는 강력한 몸짓 같아 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아도 시내와 별반 다를 것 없이 경쟁하듯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콘크리트 숲이다.

아파트에 둥지를 튼 지 십 년이 되었다. 처음 아파트로 이사할 엄두를 못 내고 고민할 때 결심을 하게 해준 것도 베란다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 때문이었다. 우암산이 보여주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변해가는 도심풍경을 관람료 한 푼 내지 않고 십 년 동안 공짜로 감상하는 혜택을 누렸으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그럼에도 시내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아쉽고 주변과의 부조화인 높은 건물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내가 누렸던 것에 대한 상실감에서 오는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땅이 좁은 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높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어느 정도 헤아려 지었으면 어땠을까.

사계절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산을 지척에서 날마다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커다란 행운일 것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건물이 높아진들 아직은 우암산을 가리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욕구와 이기심으로 인해 언젠가는 산을 가릴만한 높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으로도 참 씁쓸해진다. 우암산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데 정말 소가 누워 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면 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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