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물꼬물 넘실거리는 쓸쓸함 앞에서
꼬물꼬물 넘실거리는 쓸쓸함 앞에서
  • 배경은 단채신채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3.06.18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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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채신채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채신채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하고 그녀가 웃는다.

근래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다. 혹독한 현실에 타협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챙기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그러자 상대방이 말한다. “전 웃지 않아요, 웃다보면 잊어버릴까 봐요, 내가 뭘 하는지!” 이대사도 참 마음에 든다. 어떤 면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가득 묻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에서 자신의 마음을 토닥이며 살기엔 시스템과 여러 기계(휴대폰, 컴퓨터 등)에 순치되고 있기에 이것조차 망각하고 살 때가 많다.

요즘 들어 걷기를 안 하고 자는 날은 어김없이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진다. 또랑또랑한 정신으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거실을 배회하다가 눈에 들어 온 작품이 있으니, 박정섭 작가의 『검은 강아지』다. 내용이 하도 답답해서 읽다 밀어두었던 책을 다시 들춘다.

이름 없이 버려진 강아지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검은 강아지' 일반명사 속에 그를 나타내는 특이성은 없다. 하지만 분명 주인공이다. 선명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는 독백은 희망찬 날의 기억이 아니다. 헛헛한 희망을 주고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미련이며 자기합리화다. 세상은 얄미운 초승달의 가는 눈썹처럼 실눈을 뜨고 강아지를 관망하고 있다. 누구도 말 걸어 주지 않는 긴 어둠의 시간에 버림받은 생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수 요조는 두 마리 고양이와 사는데 평소에 그 둘을 '형` 또는 '털인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양이나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다.

친한 지인은 작년에 투병하다 죽은 고양이의 1주기가 다가온다며 해줄 건 없고 담배를 끊어 고양이를 애도 하겠다는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담배 끊는 것과 고양이를 애도하는 것의 상관관계를 묻고 싶었지만, 그의 여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책 없이 수긍이 가기도 했다.

주인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아지 앞에 뜻밖에 예전의 자신처럼 뽀얀 강아지가 나타난다. 잠시 지루한 기다림을 잊고 마주앉은 새로운 친구와 즐겁다. 우리 주인은 착하니까 너도 함께 데려가 줄거라는 공수표도 막 내민다.

하지만 당신은 눈치 챘을 것이다. 강아지는 거기 그 자리에서 눈에 덮힌 채 죽고 만다. 잠시 즐거웠던 강아지의 환형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데려갔을까, 착하게 기다리면 올지도 모른다는 강아지의 생각. 생각이 강아지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고 자신의 나중을 주인에게만 맡기고 생각하지 않은 대가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주인의 매정함 속에 죽음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가끔 훔치고 싶은 게 있다. 버림받은 느낌이 넘실거리는 어스름 저녁, 쓸쓸하고 머나먼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노을처럼 마음에 번질 때 그리움을 그리워하는 어리석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훔치고 싶다. 그래서 내것이 되게 하고 싶다.

아프고 절망스러운 순간에 자신을 버리지 않기를, 신과 단 둘이 마주하는 밥상을 받게 되더라도 늠름하게 숟가락을 들고 삶의 엄중함을 따라 힘을 내기를. 그리하여 힘이 생겼다면 길에 버려진 작은 생명에게 넓은 어깨가 되어 기댈 언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웃어야 할 때와 웃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지혜의 묘약을 지어볼까 하고 혼자 피식 웃는 사이 아침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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