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갈아타기'도 문제다
공직 `갈아타기'도 문제다
  • 권혁두 국장
  • 승인 2023.06.1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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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선거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핵심적 절차이다. 이 장치가 고장난 민주주의는 바로 사망 선고를 받게된다. 선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공정한 `룰'이 엄정하게 적용되는 심판의 장이 돼야 한다. 한 국가의 민주주의 생사가 선거를 관리하는 기구와 종사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선거관리위원회가 뿌리째 신뢰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직원 채용을 위해 가동해온 내부의 룰이 불공정과 반칙으로 점철돼 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이 식솔의 이권을 위해 국가가 부여한 책무를 포기한 이들에게 선거 관리 및 감독권을 계속 맡겨도 되겠느냐는 의문을 표하고 있다. 자식 앞에서 마구 휘어지고 구부러진 잣대가 선거 관리에서 제 구실을 할 지 믿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선관위는 헌법을 앞세워 감사원의 감사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주장의 당위성을 따지기에 앞서 드는 의구심은 이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있느냐는 점이다. 헌법이 선관위에 대해 감사원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했다 하더라도 자식을 부정 채용한 비리까지 방탄을 쳐주겠다는 취지는 아닐 터이다.

선관위는 채용절차를 대폭 개선해 재발을 막겠다고 했지만 규정 한두가지를 손보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이 복마전을 살펴보면 선관위 간부가 일반 행정기관에서 멀쩡하게 근무하던 자녀를 경력직 채용절차를 통해 선관위로 이직시킨 경우가 태반이다. 일종의 공직 갈아타기이다. 다른 공직의 자녀를 무리수를 둬가며 굳이 선관위로 끌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을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곁으로 데려와 승진까지 챙겨주겠다는 욕심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도에 따르면 선관위에선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치른 해에 유독 휴직자가 많았다고 한다. 대선과 총선 관리는 선관위의 존재 목적이라 해도 될 정도로 대사 중의 대사이다. 그 시기에 휴직자가 대거 발생하고, 그 공백을 시급히 메워야 한다는 구실로 계약직이 아닌 정규 경력직 채용이 진행됐다. 조직이 총력을 쏟아야 할 큰 일을 앞뒀는데도 당당하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있는 직원복지의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직장인의 지상 목표인 승진도 빠른 편인 모양이다. 경력직 채용 후 반년 만에 승진한 사례도 있으니 말이다.

한때 신의 직장으로 꼽히던 공무원 시험 응시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도중 이탈하는 퇴직률은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9급 국가공무원 응시자는 12만여명으로 지난해보다 4만여명 줄었다. 정점을 찍었던 2017년과 비교해 46.8%나 줄었다니 6년새 응시자가 반토막이 난 셈이다.

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직에 입문한 후 자발적으로 중도 퇴직한 의원면직자는 2018년 1만694명에서 2021년 1만4312명으로 33.8%나 늘었다. 지방직은 더 심해 같은 기간 자발적 퇴직자가 44%나 증가했다. 특히 임용 3년 이하 새내기 퇴직자가 5166명에서 9881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각종 주말 행사로 워라밸은 멀어지고 박봉에 선배들이 누렸던 안정적인 연금 혜택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번 선관위 스캔들에서는 공직이라고 다같은 공직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편법을 써서라도 자식을 데려다 놓고 싶은 자리가 공직에도 있었던 것이다. 선관위가 공직 중의 꽃 공직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돌았다. 선관위의 혁신과 함께 전체 공직의 처우 개선도 함께 진행됐으면 좋겠다. 거사를 앞두고도 직원 휴직을 장려하고 비정규직 없는 완전 고용의 세상을 앞서 구현한 선관위의 기풍이 다른 기관으로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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