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 잠긴 고대유적이 세계유산을 탄생시키다
물 속에 잠긴 고대유적이 세계유산을 탄생시키다
  •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23.05.2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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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이집트 남부 아스완 국제공항에서 차로 꼬박 3시간,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가면 사막의 모든 물을 모아놓은 듯 드넓은 호수를 만나게 된다. 약 5000㎢, 충북도 면적에 약 70%에 달하는 방대한 나세르 호수이다. 이 호수는 1970년 완공된 아스완 하이 댐(Assuan High Dam)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로, 이집트 남부 경제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 긍적적인 효과 뒤편에는 또 다른 아픔이 숨겨져 있었다. 댐의 건설로 하 누비아(Lower Nubia) 지역 전체가 수몰되었고, 이로 인해 조상 대대로 이 땅을 지켜왔던 약 11만 누비아인들의 거주지가 물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축척되어온 엄청난 숫자의 문화유산과 유적들이 모조리 수몰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아부심벨 대신전을 비롯한 아마다, 데르, 마하라카 등 희귀하고 오래된 고대의 신전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고, 그밖에도 고대 이집트 문명을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한 아스완의 화강암 채석장, 미완성 오벨리스크 등등의 기념물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이집트는 이 유적들을 충분히 보존할만한 기술적,경제적 여력이 없었고 결국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나서 이집트 누비아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게 된다. 이것이 1972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사업의 시작점이었다. 유네스코는 전 세계 각국에서 누비아 유적 보호를 위한 기금을 모았고, 그 예산으로 전세계 이집트 학자들을 수몰지역에 투입, 긴급 고고학 조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중요한 유적들은 수몰되지 않는 장소로 이전하는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되었다. 그 결과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 대신전을 비롯하여, 네베르타리 소신전, 필라에섬의 이시스 신전, 칼리브샤 신전 등이 원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있은 덕분에 지금도 누비아 지역은 매년 수백만의 사람들이 찾는 역사관광명소로서 전세계인들의 사랑받고 있다. 또한 이전된 유적들은 `누비아 유적 : 아부심벨에서 필레까지 (Nubian Monuments from Abu Simbel to Philae)'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수몰된 이후로도 누비아 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어지면서 살아있는 유산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집트 누비아 유적의 사례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충북에도 충주호와 대청호 2개의 댐으로 수몰된 수많은 유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몰되기 전 충북대학교 박물관 주관으로 수몰지역에 대한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긴급하게 시행되었고, 그 결과는 발굴보고서로 발표되었다. 또한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와 같이 중요한 문화유산은 다른 장소로 이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댐이 완공되고 수몰된 이후에는 이 지역의 유적과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물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하더라도 문화유산이 갖는 가치조차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 속에 잠들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그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더욱 심도깊은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이집트 누비아 유적처럼, 수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문화유산으로서 남을수 있는 것이다.

충북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정책으로 호수 주변지역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뜨겁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귀중한 문화자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저 커다란 두 개의 호수 속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가치에 다시 관심을 갖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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