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촉감
존재의 촉감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경
  • 승인 2023.05.1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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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한가운데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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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외로움은 혼자만의 자기 결론일 수 있다. 지금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감빛 노을을 함께 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는 고픈데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같이 먹어줄 사람도 없다는 현타가 올 때. 하지만 마음에 부풀어 있는 긴장을 풀고 돌아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더러 있고 어떤 모습으로도 연락해도 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뭔가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통증이 이어진다면 브리타 테컨트롭이 짓고 그린 <심술쟁이 고양이>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림책이니까 그래 봐야 18쪽이다.

명쾌한 두괄식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혼자 사는 심술쟁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요.” 무엇 때문에 심술쟁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지에 있는 주인공 고양이 얼굴은 비호감이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온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이유 있는 독거일 것이다. 홀로 외로움과 고독을 뒤집어쓰고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자신은 모를 테지) 주위에 말 걸어 주는 고양도 없을 것이다. 시종일관 `외롭다'고 칭얼대면서도 다른 고양이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모른다. 살가운 구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심술쟁이 고양이, 한 번도 부딪혀보려고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하지만 존재의 촉감을 느끼고 싶다면 자기희생으로 말을 걸고 다가가야 하는데 외로운 고양이일수록 소통이 부재하니 더욱 입을 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관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작용하듯이 점점 고립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을지도 모른다. 심술쟁이 고양이의 인상은 더 안 좋아지고 모든 일에 불만스러운 얼굴이 굳어져 간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작고 귀여운 아기고양이가 비를 쫄딱 맞고 심술쟁이 고양이에게 무작정 파고든다. 가냘프고 여린 고양이는 보는 눈도 없는지 인상도 안 좋고 친절하지 않은 고양이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다. 심술쟁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 친해지는 방법도 모르지만 거절하는 방법도 모르나 보다. 그렇게 아기 고양이는 심술쟁이 고양이를 따라다닌다.

관계는 부딪히면서 완성을 나아간다. 서로 만남과 접촉, 부딪히므로 다듬어지는 것이 생명관계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며 알게 모르게 조용히 서로 닮아간다. 어쩌다 아기고양이의 목숨을 구해주고 나니 더욱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무척 다르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한 고양이는 서로 사랑한다. 상대의 필요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서로 어떤 존재인지 말하지 않아도 호흡으로, 삶으로, 매일 함께 하는 시간으로 확인해간다.

하여, 이제 심술쟁이 고양이는 더 이상 심술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중이다. 회피형의 큰 고양이와 천진하고 작은 고양이의 함께함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스며든다는 것은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더 웅크리고 버둥거리고 꿈틀거리다 만나는 한때의 어스름일지도 모른다. 딱딱한 꽃게껍질이 먹먹해지도록 형체를 잃어가도 좋은 것이 스며드는 것은 아닐까. 존재의 촉각은 서로에게 자신을 나눠주고 나눠 받고 융화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 비가 내리고 있는가, 기대하시라! 당신보다 작고 아름답고 외롭고 쓸쓸한 존재가 나타날 것이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듯이 품에 안는다면, 회피하지 말고 부딪혀 부싯돌의 상쾌한 불꽃을 일으킨다면 우리의 생은 과즙 가득한 열매로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촉각이 영혼에 새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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