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5.1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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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내 인생 통틀어 짜장면을 제일 많이 먹었던 때는 갈래머리 여교시절이다. 대학갈 형편도 못되어 실업계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부모님이 짜장면을 사주실리는 만무했고 짜장면에 대한 내 욕구를 해소시켜준 분은 국어선생님이었다.

특활반에서 글쓰기를 담당했던 선생님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분이어서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학생들이 몰렸다. 첫 번째 특별활동시간에 봄이라는 주제로 시를 써냈는데 그 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선생님은 나를 문예부로 뽑아주셨다.

그 뒤부터 나의 찬란한 여고시절은 시작되었다. 여상에 가서 사무능력을 익혀 빨리 돈을 벌겠다던 목표는 제쳐두고 문예부라는 근사한 이름에 취해 최대한의 낭만을 누렸다. 학교 시화전에 참여했고 문학의 밤엔 촛불아래서 시를 낭송했고 생활관에 모여 교지를 만들었다. 그 모든 날들에는 선생님이 사주신 짜장면이 함께 했다.

우리 집과 선생님 댁은 가까이에 있어서 등하교도 같이 했다. 여학생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던 선생님과 같이 걷노라면 부러움의 눈빛들이 수도 없이 날아와 꽂혔고 나는 괜히 우쭐해지곤 했다.

졸업 후에도 선생님의 근황을 간간히 듣다가 몇 년 전부터 문예부 선후배들이 모여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선생님은 예전의 선생님 그대로 열정적이고 따뜻하셨다. 내가 병에 걸렸을 때는 “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전화 해주셨고 서툰 책 한 권을 엮어 보내드렸더니 동네 슈퍼아저씨에게 자랑하는 중이라며 내 책을 펴놓고 술을 마시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셨다. 무에 그리 장한 글이라고 연실 웃으며 장하다는 말씀을 하고 또 하셨다.

제자들을 만나러 올 때마다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채소를 싸와서 기뻐 나눠주시던 우리 선생님. 선생님을 뵈면 나도 갈래머리 여고시절의 그 어리숙하지만 풋풋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명절이면 재미있는 이모티콘과 함께 명절인사를 카톡에 올리시고 태종대가 내려다보이는 주말농장에서의 일상을 전해주시던 선생님이었는데 얼마 전 그 분의 부고를 들었다. 편찮으시다는 내색이 없었기에 선생님의 부고는 마치도 벼락같았다. 제자들에게 만큼은 당신의 아픔을 전하고 싶지 않으셨겠지만 누워 계실 때 병문안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세울 것 없는 제자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나의 진짜 선생님이셨다는 말씀을 해드리지 못한 것이 사무치게 아팠다.

내 인생은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내 시를 뽑아 주신 후와 전으로 나뉜다. 선생님을 만난 후로 내 삶은 입김 불어넣는 풍선처럼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글과 가까워졌고 그로인해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걷는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그 길에서도 자잘한 꽃들의 피고 짐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옛 말은 사라지고 교권이 무너질대로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그러기에 선생님은 꼭 계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무질서를 선생님이 아니고는 누가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만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장하다는 말씀을 해 주시던, 너를 너무 작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 주시던 나의 스승이 계시지 않은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린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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