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며
커피를 내리며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3.05.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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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커피콩을 갈 때 진하게 올라오는 향이 참 좋다. 어쩌면 커피는 향에 중독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어제 배웠던 순서를 떠올리며 커피를 내린다. 끓인 물을 서버의 목까지 부었다가 드립 포트로 옮기고 200 ml 정도를 한 번 더 서버에 따랐다가 포트에 다시 붓는다. 서버를 데우고 물의 온도를 맞추는 과정이다. 다음은 뜸 들이기 단계. 분쇄된 커피를 담은 드리퍼를 서버 위에 올리고 골고루 젖을 정도로만 재빠르게 물을 준다. 커피 가루가 빵처럼 봉긋하게 부풀고 커피 향이 훅 올라온다.

30초 뜸 들이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추출하기에 들어간다. 한가운데에서 물을 주며 물줄기를 조절한 다음, 처음에는 촘촘히 돌리면서 생겨난 거품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선형으로 점차 바깥으로 나아간다. 이때 물줄기가 드리퍼에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물이 바로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커피가 서버의 100 ml 눈금까지 추출되면 얼른 드리퍼를 받침에 내려놓고, 80 ml 물을 더 부어 희석한 뒤 커피잔에 담는다. 집에서는 이렇게 잘 되는데.

다이어트를 계기로 인스턴트커피에서 원두커피로 갈아탄 지 몇 년 됐다. 올 초 음성군평생학습관에 핸드 드립 커피 강좌가 있길래 제대로 알고 마시자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8가지 커피를 맛보고, 실습도 하고, 무엇보다 `8주간 카페를 방문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라는 문구가 맘에 쏙 들었다.

처음으로 핸드 드립 실습하던 날이었다. 강사님이 먼저 시범을 보인 뒤, 세 명씩 네 조로 나누어 조별로 차례대로 드립 하고, 12명이 내린 커피를 일일이 한 모금씩 맛보고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조 실습이 시작됐다. 청일점 남자분이 한 명 있었는데 긴장을 많이 했는지 자꾸 물줄기가 끊어져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직 점 드립법을 가르쳐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시고?”

강사님의 한 마디에 한바탕 웃고 난 뒤 그분은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다음 차례는 우리 조, 나는 스무 개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호흡부터 했다. 볼 땐 잘할 것 같았는데 직접 해보니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나 역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물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끊어졌다 난리가 났었다. 그래도 커피는 맛있었다. 강사님도 세 가지 맛이 잘 나왔다고 칭찬해 주셨고. 그런데 다음 사람의 커피를 맛본 순간 향은 물론 부드러운 신맛과 단맛, 쓴맛까지 정말 조화로운 맛이란 어떤 맛인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드립 하는 건 비슷했는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신기했다. 똑같은 원두로 이렇게 다른 맛을 낼 수 있다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커피는 원두 자체로도 각기 다른 맛과 향을 지니지만, 같은 원두라도 로스팅 정도나 뜸 들이기, 물의 온도, 시간 등 드립 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향미가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고유의 특성을 얼마나 조화롭게 뽑아내는가가 관건인 셈이다. 그래서 바리스타라는 직업도 있는 거고. 하지만 또 취향껏 즐기는 거라서 한 가지 방법만이 정답이라 할 순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맛은 자기가 가장 잘 찾는 법. 모두가 바리스타일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본다. 글쓰기도 바리스타처럼 하면 어떨까. 세상의 온갖 고유한 맛과 향을 적절한 문장과 표현으로 아름답고 조화롭게 그려내는 일,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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