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기 전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기 전에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5.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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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연로하신 이모부가 고향집을 찾아보겠다고 산을 오른 후 밤늦도록 내려오지 않아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119구조대에 구조 요청을 하였고 경찰타격대에 신고해서 경찰타격대까지 출동을 하였다. 충청도 어느 산속에서 화전 밭을 일구고 살았던 이모부는 김신조 무장공비 출현이후 정부의 권유로 고향땅을 떠나야했다.

산 속 살림만 하던 이모부에게 서울살이는 녹록지 않았으리라. 고생고생 끝에 서울에 집을 두 채나 장만하고 서울 터줏대감처럼 살고 있는 이모부지만 연세가 드시니 고향집이 그리우셨나 보다. 인적 끊어지고 산짐승만 우글대는 고향집을 노구를 이끌고 찾아 나섰으니 말이다. 집터를 찾아 헤매다 밤을 맞은 이모부는 구조대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되었지만 아직도 그 사건은 이모부의 고향원정기로 우리 가족사에 전설처럼 남아있다.

내게도 이모부의 고향집 같은, 꼭 한번은 찾고픈 그리움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카세트를 만드는 전자회사에 입사했다. 납 연기가 자욱한 현장에서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여공들이 컨베이어벨트에 붙어 앉아 납땜을 하던 곳이었다. 전자제품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공들의 머리엔 스카프까지 씌웠지만 정작 여공들의 건강을 위한 시설은 없던 곳이었다. 그 곳에서 만난 인숙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웃는 두 볼도 동글 대던 다정하고 상냥한 아이였다. 인숙이는 우리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감정의 굴곡이 심하지 않은 아이였다. 늘 평온한 얼굴이었고 그래서 그 아이 옆에 있으면 뾰족 대던 마음도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그 아이에게는 큰 소리 날일도 별반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 인숙이는 이십대의 들끓던 마음이 숨어들 수 있는 숲속 아늑한 새둥지 같은 곳이었다.

그 애는 하루에 한 가지씩 행복한 일을 찾아낸다고 했다. 영 찾아지지 않는 날에는 비스킷을 사서 커피에 찍어 먹으며 행복을 누린다고 했다. 그래서 인숙이와 비스킷을 많이도 사 먹었다. 비스킷의 고소한 맛과 커피의 부드러운 맛만큼의 행복을 수시로 누렸으니 행복의 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결혼해서 고향을 떠난 후에도 가끔씩 찾아와 주었던 인숙이인데 아이 키우며 바삐 살다보니 연락처를 놓쳐 버렸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을 타지로 떠돌다 몇 해 전 고향인 청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길도 사람도 낯설어서, 나를 이방인처럼 밀쳐냈다. `이럴 때 인숙이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제야 놓쳐버린 인숙이가 아쉬워서 속이 끓었다. 소식이 끊기지 전까지만 해도 청주에 살고 있던 인숙이 생각이 나서, 길을 다닐 때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세월이 흘러도 금방 알아볼 것 같은 그 아이의 동글동글한 얼굴을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서야 아쉬운 눈길을 거두곤 했다. 어떡해야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고향집을 찾아 나섰던 이모부는 `조금만 더 일찍 갔더라면 집터를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회한의 말씀을 아직도 하고 계시다. 누구에게나 이모부의 고향집 같은, 나의 인숙이 같은 그리움 한 자락씩은 있을 것이다. 그 그리움이 마음먹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늦기 전에 잡아 봐도 좋을 것이다.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기 전에, 서두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기왕이면 길목마다 꽃이 흐드러진 이 계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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